[사도, 2015]
감독:이준익
출연: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줄거리
재위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조선 역사 최대 비극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은 아버지 왕이 아들인 왕자를 매우 고통스럽게 죽인 사건으로 셰익스피어의 픽션 보다 더 참담하고 비극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극을 붕단 정치의 폐단, 영조의 콤플렉스, 정상적이지 못했던 부자(父子)관계 로 그려내며 다양한 시각으로 이를 정의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소재이기에 [사도]는 과거의 작품들과 다른 느낌을 줘야 했다. [황산벌][왕의 남자][구르믈 버서난 달 처럼]등 사극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한 이준익 감독은 이를 어떻게 풀이했을까?
[사도]는 시작부터 강렬하게 시작한다. 서로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뿜어내며 서로를 노려보는 부자의 기 싸움과 문제의 뒤주가 곧바로 등장하는 장면은 사도세자의 최후를 처음부터 담아내 다른 시각으로 임오화변을 정의하려 한 영화의 의도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보다 더 눈에 띈 것은 실제와 연기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유아인의 광기 어린 모습과 쉰 목소리와 떨리는 눈빛으로 냉정한 정서를 느끼게 하는 송강호의 연기였다.
이후 이야기는 과거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와는 정반대인 다정한 부자지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묵직하게 현재의 순간을 담으려 했던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을 통해 다정할 수 도 있었던 부자가 왜 이런 비극을 맞이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사도]는 이준익 감독의 전작의 사극들과 달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이야기와 진실을 실험적 또는 풍자적으로 다루려 하기보다는 정통 연기와 묵직한 연출을 통해 그려내려 하고 있다. 새롭고 신선한 인상을 주기 보다는 당사자들이 느꼈을 정서를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해 공감도를 높이려 한 것이다. 투박하지만 인물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고, 이를 그려낸 영상미와 디테일은 현실감이 살아 있었다. 이를 통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는 애정어린 잔인한 부성애, 가슴으로 담아둬야만 했던 마음의 병,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유지될 수 있었던 왕가의 슬픈 역사와 같은 가족적인 정서였다.
영화속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말리려 한 대신들을 향해 "이것은 우리 집안의 문제다!"라고 외친 것처럼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슬픈 가족사(史)로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맞춘 초점은 궁궐과 그 안에 살고있는 왕가의 가족들이다.
[사도]의 흥미는 바로 이러한 특별한 가족의 묘사에 있다. 이준익 감독은 이를 디테일한 고증과 묘사를 통해 철저하게 그려내 예(禮)를 통해 진심을 전달하려는 유교적 방식을 정감있게 표현해냈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든 어른에게 까지 냉정하게 적용된 예법과, 왕이 되기 위해 시행된 엄격한 교육방식, 조상들을 기리는 제사, 중전과 후궁이 서열을 정하면서 서로간의 예를 지키는 방식 등 유교적 관념에 모든것이 철저히 잡혀있는 가족의 모습은 답답함 보다는 정감어린 정서를 불러온다. 그속에서 조금씩 배우들의 개성과 현대식 말투를 등장시켜 엄격하지만 끈끈한 정이 담긴 왕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비극은 이러한 유교적 예법 속에 가려져 따뜻한 말 한마디 조차 직접 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가족 간의 감정의 부재가 원인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의 21대 왕이 된 영조는 성군의 칭호를 받았지만 감추고 싶었던 콤플렉스(어머니의 과거, 이복형을 죽였다는 의심)가 있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스스로 완벽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귀하게 얻은 아들에게도 물려주고자 했다.
영조의 이러한 과한 관심과 교육열은 너무도 유별나게 그려진다. 유능하면서도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조그만 실수, 행동을 크게 나무라고 비하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애정'보다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이러한 과한 행동이 대립으로 치닫는 데 정점을 찍는 부분은 아들에게 왕의 업무를 맡긴 '대리청정'과 왕위 자리를 물려주려 한 '양위파동'이었다.
이 부분에서부터 [사도]는 가족영화에서 냉정한 정치영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엄과 권력을 지키고자 했던 욕심은 아들인 세자에게 심각한 혼란을 가중하게 된다. 교육으로 인한 무시에 정치적 희생양이 되면서 이성을 잃고 망가지는 세자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비추며 서서히 대립각을 내세우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아버지의 과한 욕심과 기대, 그러한 부응에 지쳐 증오심과 분노를 키우는 아들의 대립 과정은 밀도 높은 긴장감과 슬픔의 정서를 저절로 불러오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질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부분을 연상케 하는 대립 구도, 애정에 대한 인간의 정서와 욕구 등 [사도]가 말하고자 한 중점적인 메시지에 대해 유심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도]가 담고 있는 상징적인 부분인 동시에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의 후반 영조와 사도세자가 마음으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두 부자의 싸움을 묵묵하게 바라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에게까지 이어지게 되는 대목은 부자간의 애정, 희생, 남성성의 슬픈 비애를 담고 있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어긋난 애정이 불러온 비극이 그 다음 대인 정조를 만들어낸 과정은 아이러니하지만 왕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수한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 동시에 영조와 사도세자의 시각에서 진행된 영화를 사도세자와 정조의 관계로 그려낸 듯한 인상을 더 해줘 부자에 관한 모든 의미를 담아낸 영화임을 보여 준다.
부자간의 혼란 속에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세손을 지키려는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남성 간의 대립 속에서 냉철함을 유지하며 왕가를 지켜온 '모성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초반과 중반까지 유지된 단순 명료한 이야기 구성이 이러한 색채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야기를 길게 진행하고 싶었던 욕심 탓인지 후반부의 늘어진 스토리와 전개방식은 영화의 주제와 무관해 보여 지루함과 감정선의 방해를 줘 완벽할 뻔했던 드라마의 정점을 찍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 이해는 가지만 젊은 배우들을 노년의 나잇대까지 분장시킨 부분은 조금은 무리 수적인 장면이어서 호불호의 반응을 볼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도]는 그동안의 임오화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극의 드라마를 추구하고 있지만, 오랜만에 힘이 들어간 묵직한 연기와 연출로 근래 보기 드문 강렬한 가족드라마 이자 정통 사극 영화를 완성했다.
그 정점에는 대체불가의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송강호가 있었고, 이를 받아낸 유아인의 열연이 큰 몫을 해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문근영은 큰 눈망울을 통해 남편의 비극을 바라보며 아들을 지켜야 하는 아내의 감성을 잘 표현했으며, 사랑하는 아들의 최후를 바라봐야 하는 영빈을 연기한 전혜진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특히나 모든 캐릭터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유의 냉철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홍봉한역의 박원상의 연기는 극의 안정된 분위기를 끌어내며 [사도]가 지닌 드라마의 색채를 완성하는 데 일조한다.
과거의 이야기이고 수많이 이야기된 역사적 소재였지만, [사도]가 보여준 감성은 이상하리만큼 오늘날 아버지와 아들의 어색한 관계에 대한 진심을 보는 것 같아 남성관객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어색할 수도 있지만 한 번씩 자신의 마음에 담고 있는 진심을 서로와 함께 공유해 보는 게 어떨까? 그러한 따뜻한 나눔을 영화 속 누군가는 굉장히 그리워했으니 말이다.
[사도]는 9월 16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영상=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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