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로미오와 줄리엣][타이타닉]에서 보여준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지만 지난 15년간의 그의 행보는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려는 길이었다.
자신의 연기관에 대해 "감정적으로 병든 인물을 그려내는 일은 나에게 진정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인물의 다양한 감정과 내면을 연기하는데 있어서는 정점에 오른 모습을 보여주며 매 순간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이러한 행보가 '청춘 스타'의 꼬리표를 떼고 싶어하는 전략적인 몸부림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아역 시절부터 차분하게 연기력을 쌓아오며 나날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그였기에 지금의 전문 연기자로서의 행보는 당연한 수순으로 해석될 수 있다.
스타성만큼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배우로 인식되어 가는 그의 40여 년의 연기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을 10위에서 1위까지 순위별로 선정했다.
10위.[인셉션] (2010)
감독:크리스토퍼 놀란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켄, 조셉 고든 레빗, 엘렌 페이지
[다크나이트]의 크리스토퍼 놀란과 함께한 [인셉션]은 대중성과 완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력을 남기고 싶었던 디카프리오의 의중을 읽을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놀란이 설계한 복잡한 꿈의 세계를 실감 나는 어드벤처로 그려낸 현실감 있는 연기와 더불어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 코브를 애절한 내면 연기로 표현함으로써 [인셉션]을 한편의 격정의 드라마로 완성시키는데 기여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그리움과 분노의 감정을 동반한 아내 멜(마리온 꼬띠아르)에게 이별을 구하는 장면은 꿈이 세계가 붕괴하는 긴장감 속에서도 냉철함과 애틋함을 잃지 않는 코브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그려낸 명연기였다.
9위.[캐치 미 이프 유캔] (2002)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 크리스토퍼 월켄, 나탈리 베이
[캐치 미 이프 유캔]은 [타이타닉] 이후 별다른 화제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디카프리오를 다시금 톱스타의 반열로 올려준 작품이자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보고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작업한 이 영화로 그는 마틴 스콜세지, 리들리 스콧, 에드워드 즈윅과 같은 쟁쟁한 감독들의 주목을 받을수 있었다.
미국을 발칵 뒤집은 매력적인 천재 사기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답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외모와 스타성에 의존하는 오락물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프랭크 아비그네일 주니어라는 어린 사기꾼의 슬픈 자화상이 그려진 드라마였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에 감탄하고 즐기며 세상을 조롱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가족의 부재에 슬퍼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십대 후반 소년의 나약함 그 자체였다.
영화의 후반, 오랫동안 추격전을 벌여온 FBI 요원 칼(톰 행크스)에게 위조지폐를 자랑하다 아버지처럼 다가오는 그에게 자수하게 되는 장면은 대담했지만 마음만은 여린 소년이었던 그의 심리를 대변한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소년'의 모습을 볼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기도 했다.
8위.[길버트 그레이프] (1993)
감독:라세 할스트롬
출연:조니 뎁, 줄리엣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당시 틴에이저 스타였던 조니 뎁과 함께 출연한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적장애 동생 어니로 출연해 형 길버트의 마음을 애태우는 귀여운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존재지만, 형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다 우연히 마을을 방문한 캠핑족 소녀 베키(줄리엣 루이스)와 형을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부족하지만 순수한 어니를 정감있게 연기함으로써 [길버트 그레이프]의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지적장애인을 따라 하려고 하기보다는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으려 한 19살 소년이었던 그의 열연이 가장 눈에 띄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을 통해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7위.[디파티드] (2006)
감독:마틴 스콜세지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잭 니콜슨, 마크 월버스, 마틴 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만의 내면 연기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바디 오브 라이즈][인셉션]처럼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는 개인들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때 빛을 본다.
아마 그러한 그의 연기적 특성이 가장 빛나던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세 번째로 손을 잡은 [디파티드] 였다.
원작 [무간도]가 범죄집단에 잠입한 경찰 스파이 진영인(양조위)의 냉철한 면을 부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디파티드]는 경찰측 스파이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내적 갈등과 정체성 혼란과 같은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양조위가 연기한 원작의 캐릭터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비교차가 다소 커 많은 논란을 불러왔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나약하고 신경질적인 빌리의 존재감 덕분에 [디파티드]는 [무간도] 보다 더 냉정하고 잔인한 갱스터 세계의 냉혹함을 강렬하게 담은 리메이크 작품이 될 수 있었다.
6위.[장고:분노의 추적자] (2012)
감독:쿠엔틴 타란티노
출연:제이미 폭스, 크리스토프 왈츠, 사무엘 L. 잭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짧은 분량이었지만, 존재감만큼은 강렬했던 [장고:분노의 추적자]의 캘빈 캔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장기인 감정 연기와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수다성이 조화를 이룬 강렬한 캐릭터였다.
품위와 여유를 지닌 부잣집 도련님의 외형과 달리 허세와 잔인성에 찌든 악마 캐릭터로 타란티노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캐릭터와도 같았다.
그의 그러한 대표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퍼 왈츠)와 장고(제이미 폭스)앞에서 흑인 해골을 앞에 두고 강의하며 그들을 협박하는 장면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해골을 들이대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광기스러운 대사를 쏟아내는 모습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5위.[제이.에드가] (2011)
감독: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아미 해머, 나오미 왓츠, 에드 웨스트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도 특출난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이중 가장 대범한 작품은 FBI의 창설자인 J.에드가 후버의 이야기를 그린 [제이.에드가]였다. 미국 현대사에 있어 엄청난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를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가 연기하려 한 후버는 위엄만 유지했던 일차원적인 인물이 아닌 편집광과 스스로가 만든 망상에 사로잡힌 권력자의 쓸쓸한 모습이었다. 특히 말년의 후버를 연기하기 위해 노인 분장을 감행하는 디카프리오의 변신은 내내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음울하고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답게 한 인물의 어두운 과거를 따라가려 했던 그의 노력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4위.[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감독:샘 멘데스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케시 베이츠, 마이클 섀넌
[타이타닉]의 연인이 결혼해 부부 생활을 유지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그 답을 제시해준 영화가 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였다.
케이트 윈슬렛과의 재회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었지만, 영화는 [타이타닉] 팬들의 기대와 달리 로맨틱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현실적이면서도 어둡고 슬픈 분위기의 영화였다. 사랑하지만 서로의 처
해진 현실 때문에 멀어질 수 밖에 없는 부부 사이를 현실감 있게 연기한 두 배우의 호흡은 여전히 화자 되고 있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느끼게 되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다양하게 연기하는 디카프리오의 캐릭터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케이트 윈슬렛의 애절한 연기를 조용하게 받아주는 보조적인 역할에서도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인 장면인 영화의 후반부 아침 식사 장면은 지금까지 이 두 배우가 보여준 최고의 호흡이자 오랜 여운으로 기억되는 명장면이었다.
3위.[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2013)
감독:마틴 스콜세지
출연: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조나 힐, 카일 챈들러, 마고 로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당황 그 자체의 작품이었다. 월가에서 늑대처럼 일하며 황제처럼 살았던 졸부의 파란만장한 실화를 진지한 시선으로 마주하려 하기보다는 섹스, 마약 등의 온갖 난잡한 요소들이 결합한 '막장극' 이었다.
이를 통해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콤비가 조명하고자 한 것은 자본, 물질 만능 시대가 가져다준 인간의 타락이었다. '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종일관 마약, 섹스에 중독된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3시간 동안 자본이 가져다주는 부에 의해 철저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21세기의 [칼리굴라]로 완성하는 데 일조한다.
잠시나마 청춘스타 시절의 밝은 모습을 보나 싶었던 기대가 사라질 때쯤, 그의 연기 인생사상 가장 추하다 싶을 정도의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진다. 친구 도니(조나 힐)가 가져다 준 마약의 효과를 뒤늦게야 느끼게 된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뇌성마비에 걸린채 기어다니는 장면은 처절하다 못해 웃음까지 유발하는 고도의 풍자성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2위.[에비에이터] (2004)
감독:마틴 스콜세지
출연: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베킨세일, 알렉 볼드윈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팬암 조종사라 속이며 마음껏 사기행각을 즐겼던 소년기 넘치던 청년은 그다음 작품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계적인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비행기 조종을 취
미로 여기고 있는 거부의 이야기였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통해 소년기의 마지막을 연기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에비에이터]를 통해 뼛속 깊이까지 다른 인물이 되어야 하는 고도의 내면 연기를 경험하게 된다. 모든 것을 가졌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 누구도 꿈꾸기 힘든 거대한 야망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버리는 남자의 이야기는 서글프면서도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잘생긴 외모와 엄청난 재산을 지녔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생긴 과도한 편집증과 결벽증세로 정신병을 얻어 은둔생활을 하다 폐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려내기 위해 디카프리오는 극과 극을 오가는 파격 분장과 파괴된 내면을 상징하는 행위 예술과도 같은 연기를 진행한다.
초반 그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부러움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되지만, 시간이 흘러 스스로 파멸되어 가는 과정에서는 연민의 감정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청문회장에서 그 누구보다 당당했던 그가 화장실에서 결벽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은 보는 이 마저 그의 고통을 느끼게 하며, 파멸을 예감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다.
덕분에 하워드 휴즈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테리 무어는 [에비에이터]를 보며 "어쩌면 엉덩이까지 휴즈와 똑같대…"라는 말까지 듣는다. [에비에이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한 단계 더 발전된 전문 연기자로 성장하게 되는 발판이었다.
1위.[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
감독: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톰 하디, 돔놀 글리슨, 윌 폴터
[레버넌트]는 지금까지 디카프리오가 보여준 연기의 집대성이자 역대급 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곰과의 처절한 사투에서 부터 복수를 위해 어떻게든 생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내면을 표현하는 감정연기는 '청춘 스타'로 인식된 그의 이미지 마저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광기에 대한 집념과 디카프리오 본인이 지니고 있는 감정의 폭은 최고의 조화를 이뤄내며 그 어디에도 보기 힘든 고통, 공포, 분노의 정서가 동반된 처절한 생존기를 그려내는 데 일조한다.
[레버넌트]는 기적과도 같은 실화를 공포스러운 광기와 운명에 맞서는 집념의 드라마를 완성해, 한편의 대서사시적인 이야기를 구축했다. 이 서사시 속의 디카프리오는 인간의 집념과 자연에 대한 순응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버넌트]를 통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다시 한 번 아카데미를 향한 도전을 이어나가게 된다. 설령 또다시 아카데미와의 인연을 못 맺는다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를 조롱하기보다는 [레버넌트]의 휴 글래스를 연기한 위대한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