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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리뷰: 정조의 숨막히는 [24시]

14.04.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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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2014]
감독: 이재규
출연: 현빈, 정재영, 한지민, 조정석, 박성웅, 김성령, 정은채, 조재현
 
줄거리
인시(寅時) 정각(오전 3시)
정조 1년,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조(현빈). 정조가 가장 신임하는 신하 상책(정재영)은 그의 곁을 밤낮으로 그림자처럼 지킨다.
 
인시(寅時) 반각(오전 4시)
날이 밝아오자 할마마마 정순왕후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위해 대왕대비전으로 향하는 정조. 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금위영 대장 홍국영(박성웅)과 상책이 그의 뒤를 따른다.
 
묘시(卯時) 정각(오전 5시)
'주상이 다치면 내가 강녕하지 않아요.' 노론 최고의 수장인 정순왕후(한지민)는 넌지시 자신의 야심을 밝히며 정조에게 경고한다.
 
묘시(卯時) 반각(오전 6시)
정조의 처소 존현각에는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가 의복을 수거하기 위해 다녀가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김성령)이 찾아와 ‘지난 밤 꿈자리가 흉했다’며 아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진시(辰時) 육각(오전 8시 30분)
한편 궐 밖, 조선 최고의 실력을 지닌 살수(조정석)는 오늘 밤 왕의 목을 따오라는 광백(조재현)의 암살 의뢰를 받게 되는데…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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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은 사극 콘텐츠의 무수한 소재가 되었던 '정유역변'(정조암살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조의 개혁 군주적 성향과 '왕 시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정의와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았던 만큼 지속적인 콘텐츠로 제작될 매력적인 소재인 것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흔해져 버린 이야기이기에 학습이 되어버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인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 정조의 일대기를 그린 TV 드라마 [이산], 정조 암살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8일] 등, 이외에도 정조와 그의 암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다.  
 
그만큼 [역린]은 과거의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과 차별을 두는데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선택된 최선책은 정조역으로 캐스팅 된 현빈이었다. 그의 스타성을 의식한 캐스팅일 수도 있지만, 25세의 나이에 왕으로 즉위햇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젊은 왕의 성장과 활약을 그린다는 측면에서 관객들이 정조를 보는 시각은 달라질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라 해도 무방했다. 건장한 체격과 근육을 가진 외형성과 과거의 아픔과 정적들로부터 나약함을 감추고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연기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며, 역사적으로 언급된 정조의 개혁군주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이러한 정조의 면모를 강렬하게 그려내기 위해 영화는 다양한 연출기법과 이야기를 동원한다.
 
*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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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의 이야기 전개는 미드 [24시]의 방식과 비슷하다.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자막을 통해 시간을 알려주며 긴박한 사건의 흐름을 전달하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과 배경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 장소가 궁중인 만큼 영화는 '궁중 24시'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섬세하고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 궁중 내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정조가 머문 '존현각'에 대한 치밀한 묘사, 궁중의 정문을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번 작품을 통해 다소 생소할수도 있는 조선 시대 세탁소인 '세답방'에 대한 묘사와 다양한 궁중 법도와 예절, 의식까지 [역린]은 '보는 영화'와 '역사적 흥미'를 주는 측면에서 궁중을 흥미로운 장소로 그려낸다.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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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세심한 설정과 묘사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미장센으로 연결된다. 사건의 중심적 장소인 '존헌각'은 정조의 개인 서재이자 거처로서의 일차원적 장소가 아닌, 아련한 추억이 모여진 공간이자 불안과 긴장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한 정조 본인의 심리가 반영된 '마음의 방'과 같은 곳으로 묘사된다. 또한, 예복과 상복을 통해 그려지는 심경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할아버지 영조에 대한 애증으로 연결된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는 내시 상책이 인물들과 우정을 나누고 관계를 맺는 도구가 되며, 조선 최고의 살인마 '살수'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손목에 걸어둔 장식 목걸이를 통해 대변된다. 비밀을 간직한 채 세답방 나인으로 들어온 월혜는 자신이 불우한 어린 시절과 미천한 신분으로 살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어린 나인의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신겨주는 장면을 통해 이야기한다. 모든 인물을 단순한 도구로 사용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존재로 비중을 높여주려는 이재규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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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을 설정해 이야기의 다양성을 넓혔다. [역린] 또한 이런 방식을 선택하였는데, 주인공 정조에게 비중을 높이지 않고 '왕 시해'라는 한 가지 사건에 개입된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춰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내어 비중을 높이려 한다.
 
영화는 이 수많은 등장인물을 두 분류로 나누었다. 주인공 정조를 보좌하는 내시 상책(정재영), 정조의 경호를 맡으며 반대파들의 축출을 주장하는 홍국영(박성웅), 그리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를 정조 편에 두었으며, 정순왕후(한지민), 살수(조정석), 광백(조재현) 그리고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를 암살 참여자들로 설정한다.
 
대립은 궁중 내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정조는 정순왕후를 할머니로 모시고 있지만,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의 최고 수장이며,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그녀를 경계해야만 한다. 연령대가 비슷한 정조와 정순왕후가 대화하고 약간의 스킨십을 나누는 부분은 묘한 인상과 긴장감을 연출한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도 대립하며 두 모자를 위협하는 강력한 악역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인 조선 최고의 군부세력인 구신복(송영창)과 대립과 공존이라는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다양한 인물 대립 구도는 세상에 대한 개혁을 꿈꾸는 정조의 이상과 현실을 나태내는 대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궁중 인물들이 대립하는 사이, 그들을 보조하는 조연진 각자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왕을 보좌하는 내시 상책이 궁중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과 살수, 광백, 월혜의 관계를 '회상'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순도높은 드라마를 완성한다. 정조 암살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모인 인물들이지만, 이 사건에 관여한 모든 인물에게 드라마를 선사해 의미를 더 하는 과정은 [역린]이 추구하려는 메시지로 연결된다.
 
이는 '왕 시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민초들의 불행한 삶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정조가 개혁 군주로서의 기반을 다지게 되는 과정으로 연결해 그가 아버지의 원수와 같은 사적인 감정과 싸우는 사람이 아닌 부정부패와 권력의 탐욕이 만연한 세상과 맞서 싸우게 될 것이란 것을 암시한다.
 
*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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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의 이같은 보편화한 의미부여와 각 인물의 비중 성을 높여주는 연출은 좋은 시도이자 무리수였다.
 
너무 많은 인물들에게 비중을 높이고 그들의 사연을 이야기한 바람에 산만한 구성을 예상했지만, 후반부로 이어져 '정조 암살'로 이야기를 통합시키는 과정은 괜찮았고, 인물들의 비중 도를 절묘한 분량 계산과 미장센 기법을 통해 산만함을 배제하려는 노력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관객의 호불호는 명확해 질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이 방식은 너무나 복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져,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많은 에피소드를 원하는 관객들에는 [역린]은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 관객들에게는 2시간 15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할 수도 있다.
 
좋은 연기와 흥미로운 영상기법이 눈에 띄지만, 인물들의 비중과 이야기의 전개는 아쉬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점이 많지만 때로는 그것이 단점이 되며, 달리 보면 그 장점 덕분에 영화를 즐겨볼 사람들도 상당할 것이다.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패션 70's] [더킹 투 하츠]등 TV 드라마에서 새로운 시도와 이야기를 연출하며 주목을 받았던 이재규 감독의 장편 영화였던 만큼, 그가 보여준 '욕심'이 스크린에서도 큰 관건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작품성:★★★☆
오락성:★★★
연기:★★★

연출력:★★★
 
총점:★★★
 
P.S: 한지민, 조재현이 정조와 대립하는 인물들을 연기하는데, 한지민은 [이산]에서 정조의 여인으로, 조재현은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의 신하인 이인몽을 연기한적이 있다. 전작에서 정조편에 선 인물들이 그를 시해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최재필 기자 movierising@hrising.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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