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엘이었다. <바람바람바람>에서 섹시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종일관 예측불허의 순간을 만들어낸 제니는 이엘이 아니었다면 완성되기 힘든 캐릭터였다. 평소 어떤 순간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이엘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제니는 그녀의 인생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혼연일체와 같은 캐릭터를 만난 그녀의 심경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과물을 본 소감과 본인 연기를 평가하자면?
영화가 너무 재미있게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내 개인에 대한 점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높게 줄수 없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 보면서 많이 뿌듯했다.
-이 영화의 불륜관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다.
등장인물 모두 어른이지만 철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바람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모두가 다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영화 속 바람은 등장인물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당구장 등장 신에서 부터 제니라는 캐릭터가 매우 당당한 캐릭터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인중에 이상형이 사구를 잘 치는 여자라고 하는 분이 계셔서, 그 말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완성했다. (웃음) 그 장면이 제니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거침없고 당당한 캐릭터이며, 이성에게는 섹시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도 당구를 잘 치는 편이신가?
아니다. (웃음) 이번 영화 때문에 당구를 배우게 되었는데, 막상 해보니 왜 남자들이 자면서도 당구 꿈을 꾸는지 알 것 같았다. (웃음) 사실 진짜 실력은 점수가 나올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이병헌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촬영하기 전 감독님의 전 작품을 보면서 연기, 대사 뉘앙스를 연구 했고, 그것이 연기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표현을 잘 안 하는 분이시다 보니 촬영하는 내내 그분의 의중을 읽기가 어려었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정확한 계산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셔서 여러 정확한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다.
-배우들 간의 연기 호흡과 대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빠른 호흡을 어떻게 맞췄나?
선배님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감독님의 연기 템포가 너무 빨라서 느끼기에 너무 어려웠다. 다행히 배우들이 서로 친해지고 돈독해지니까 그 우려되었던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다. 베테랑 선배들도 처음 적응하기 어려워하셨지만, 금방 적응되어서 나도 빨리 따라가게 되었다.
-대사들이 애드립이었나?
아니다. 전부 감독님이 쓰신 대사들이었다. 오히려 애드립을 하면 할수록 제니의 캐릭터를 해칠 수 있다 생각했다. 오히려 감독님이 완벽한 그림을 그리셔서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대사들이 바로바로 받아쳐야 하는 스피드가 있다보니까 엔지가 많았다. 특히 내가 엔지가 많았는데, 코미디와 같은 밝은 톤의 작품을 하다 보니 웃음을 참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선배님들의 연기가 너무 웃겼다.
-가장 많은 웃음을 준 선배는?
우선 다 재미있었는데, 이성민 선배님의 연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선배님 본인 특유의 유쾌함이 담겨 있어서 참 재미있었다. 웃음을 유도한 게 아닌데도 보기만 해도 너무 웃겼다. 그리고 아는 것도 많으셔서 다양한 말발로 우리를 웃겨주셨다. 신하균 선배님은 평소에도 참 진지한 분이신데 연기를 하실 때 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셔서 너무 신기했다.
-제니가 본 석근의 매력은 무엇인가?
극 중 제니라는 인물이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래서 석근과는 남녀 간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받아쳐 주다 보니 포근한 아저씨처럼 생각했을 거라 본다. 그래서 나는 제니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캐릭터라 생각하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큰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니는 미영과의 관계에서 에도 발전할 수 있었을 거라 본다.
-설명해 준 대로 보니 영화가 관계에 대한 드라마 같다.
맞다. 보시다 보면 철없는 어른들의 슬픈 이면과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로 봐도 좋다. 아마도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30대 성인들 모두 아직도 고민하는 주제 아닐까? 거기에 대한 고민이 담긴 영화다.
-본인에게도 철없는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나 같은 경우 평소 친구와 언니들과 있을 때는 18살, 스무 살 같다. 그렇게 주변인과 함께 놀았을 때부터 아직도 내가 애 같다는 게 느낀다. 그 점에서 봤을 때 나는 아직도 철없고 덤벙거리는 아이다.
-사람들은 왜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라고 하는 게 옳은 생각이라 본다. 옆의 사람에게 해답을 얻는 게 맞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들이 철없는 어른들이라 정의한 것이다.
-작품을 하면서 결혼관에 변화를 준 게 있다면?
나는 원래부터 독신주의였다. 20대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결혼 제도를 못 믿는다기 보다는 지금 내가 하는 삶이 나에게 아주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남자 여자의 결합이 아닌 모두의 책임인 만큼 그것을 내가 부담하기에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결혼은 아직 나에게는 먼 이야기 같다.
-그 생각은 바뀔 여지가 있다는 것인가?
제니 대사처럼 흘러보는 대로 하는 거겠지만, 지금은 독신주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다. 아마도 그 대상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엘이 추구하는 섹시함의 철학은?
과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내 섹시함의 철학이다. 노출 연기를 하되 그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당한 선이라 생각할 만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내 원칙이다.
-<황해><내부자들> 같은 남성 중심적 영화에서 돋보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관객들은 극 중 섹시한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보여준 남다른 모습이 돋보였다. 남자들이 출연하는 작품에서 여배우가 돋보일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이라 보는가?
그것은 남녀의 구분을 떠나서 그 캐릭터가 작품 속에 담겨진 룰을 잘 지키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캐릭터에 충실하고 표현을 잘 해내면 된다.
-제니는 본인 그대로의 모습이라 봐도 좋을까?
나와 참 닮아있는 지점이 많은 것 같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부분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도 그렇다. 그래도 제니가 나보다는 용감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왜 본인보다 용감하다고 생각하시나?
순간순간 드는 감정으로 인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맞이하는데, 그럼에도 제니는그 상황을 흘러가는 대로 즐긴다. 현실의 나는 그 부분을 두려워할 뿐이다. 그 점에서 보면 제니가 참 부럽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아티스트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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