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L'amour Fou.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20세기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다큐를 봤다. 예술영화다운 위트 있는 일러스트의 컬러감이 유쾌한 오프닝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1957년,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디자이너가 되어 컬렉션을 이끌고, 25살 오트쿠튀르 하우스 '이브생로랑'을 설립했다. 1966년, 패션계에서 최초로 여성을 위한 팬츠 수트를 선보였고, 트렌치 코트를 창조했으며, 패션쇼 피날레에 등장하기 시작한 첫 번째 디자이너다. 오트쿠튀르 무대에 흑인모델을 처음 올린 사람 역시 이브생로랑이다. 겉으로 화려했던 만큼 천재 디자이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압박도 컸을 것이라 예상된다.
영화는 그들의 집에 대한 다큐 제작이 목적이었지만 감독이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었던 '피에르'와의 인터뷰 후 방향이 바뀌어 '피에르'의 시선으로 본 인간 '이브 생 로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피에르 베르게'는 프랑스에서 동성애자의 권리를 찾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평가 받는 시인이자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아울러 2009년 기금 기부를 통해 에이즈환자에게도 존경 받는 인물이다.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돋보이는데, 멜로디는 한없이 우울하다. 천재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화려한 런웨이 직후 박수 갈채를 받을 때 이외에는 항상 그늘지고 우울해져서 술과 마약에 중독되었던 '이브 생 로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기 위해 설치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감정 이입을 잘하는 편이라서 힘든 영화를 꺼리는데, '이브 생 로랑'이라는 제목만 보고 선택했다가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그 우울함이 나에게도 깃들게 되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콜렉션이 끝나면 떠났던 모로코 여행에서 '이브 생 로랑'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젊었을 무렵 꽤나 미남이었는데, 차갑고 날카롭게 생긴 외모와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도 인상적이었다. '이브 생 로랑' 인터뷰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물었을 때 여러 번 '빵빵한 쿠션과 커다란 침대'라고 강조하던 해맑은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살아있을 때 연인 '피에르'와 함께 평생 모은 예술작품들이 경매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죽어서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무가치,무의미함'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피에르'가 주관한 이 경매는 세기의 경매라 불리며 6000억 원의 수익을 냈고, 에이즈 재단에 기부되었다.
패션을 몰라도 인간 '이브'와 '피에르'의 삶과 사랑을 엿보려면, 디자이너 '이브' 가 아닌 인간 '이브'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라무르를 추천한다. '이브'를 알고 그의 작품들을 보면 한층 새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CGV 무비꼴라주에서는 영화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진행해 영화를 본 뒤 뒷얘기랄까, 큐레이터가 본 관점 등을 설명해주는데 좋았다. 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이 다큐에서 그 영역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생각하면서 보면 더욱 흥미로울 듯.
(사진=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