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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비하인드] 한국인이 사랑한 스타였지만…한국을 조롱한 이후 추락한 그녀 멕 라이언

18.04.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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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마거릿 메리 에밀리 앤 히라(Margaret Mary Emily Anne Hyra)
생년월일: 1961년 11월 19일
신장: 173cm
출생지: 미국 코네티컷주 페어필드

1. 학교 '얼짱 소녀'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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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 라이언은 고등학교 시절 코네티컷주 베델에 있는 베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부터 남다른 미모를 자랑했던 그녀였기에 학교에서 주최한 미인대회 관련 대회의 우승을 독차지했으며, 1979년 졸업반 시절에는 학교 최고의 '여왕'으로 선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했다. 


2. 원래 꿈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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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꿈은 언론인이었으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코네티컷 대학에 입학하다 뉴욕 대학교로 편입해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학교 재학중 한 광고관계자에 눈에 띄어 광고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로 인해 연기 분야에 관심을 갖게되어 학교내 시나리오학과의 수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3. <탑 건>의 신스틸러로 유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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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졸업 이후인 1981년 영화 <여인의 계단>의 단역을 시작으로 오랜 단역 생활을 해오던 멕 라이언은 1986년 톰 크루즈 주연의 전투기 영화 <탑 건>의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라이징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 매버릭의 절친이자 파트너인 구즈의 아내 캐롤로 예쁜 외모와 단발 머리 헤어스타일로 등장해 발랄한 분위기를 더해주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4. 첫 인생작 <이너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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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건> 출연 이후 멕 라이언은 1987년 SF 코미디 영화 <이너스페이스>의 주연에 캐스팅 된다. 인간의 신체에 들어가 탐험하는 공군 조종사의 이야기가 담긴 B급 성향의 SF 코미디에서 특유의 이쁜 외모와 발랄한 모습을 선보여 코미디물 다운 흥미를 불러와 영화의 흥행에 성공했다. 이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데니스 퀘이드와 <죽음의 카운트다운>에 출연한것을 계기로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할 때 까지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너스페이스>의 성공 이후 멕 라이언의 캐스팅 행보는 지속되었다. 


5. 두번째 인생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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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출연작 <아메리칸 드림>을 통해 이탈리아 샐조마조레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다음 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출연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을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후 이와 비슷한 성향의 로맨스물에 연이어 캐스팅 되면서 멕 라이언은 명실상부한 할리우드 최고의 로코여신으로 떠오르게 된다. 


6. 90년대 로맨스의 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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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90년대의 로맨스 영화라면 멕 라이언의 출연작들이 언급되고는 한다. 그만큼 자신만의 확고한 이미지를 할리우드에 정착시켜 성공한 케이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비롯해 톰 행크스와 함께 호흡을 맞춘 1992년 작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1996년 영화 <프렌치 키스>는 멕 라이언의 대표작이자 국내외 로맨스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7.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이 될 뻔...그녀가 포기한 명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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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타인 만큼 다양한 작품의 캐스팅 제의가 많았고, 그로 인해 놓쳐버린 유명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줄리아 로버츠에게 제안이 들어오기 전 먼저 그녀에게 제안이 갔던 <귀여운 여인>이었다. 당시 각본을 받은 멕 라이언은 "영화의 줄거리와 설정이 너무나 진부하다" 라고 악평하며 각본을 뿌리쳤는데, 영화가 보기좋게 성공해 줄리아 로버츠를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자 작품을 놓친걸 아쉬워 했다는 후문이 자자했다. 재미있는 일화는 이후 줄리아 로버츠가 각본을 읽고 거절한 작품을 멕 라이언이 받게 되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었다는 사실. 그 외에도 1995년 영화 <투 다이 포>를 비롯해 <사랑과 영혼><양들의 침묵><철목련> 같은 인기작들도 그녀가 놓친 대표작이었다. 


8. 어머니와 의절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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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이후부터 멕 라이언은 가족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로 인해 이혼한 엄마를 원망하며 자주 충돌하게 되었고, 유명하진 이후에도 몇번 연락하다가 완전히 의절하게 되었다. 이러한 어머니와의 소원한 관계는 멕 라이언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는데...


9.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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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같은 발랄한 이미지의 영화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여배우들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사그라 들기 시작하면 더이상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 그렇기에 한가지 장르에 국한된 배우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야 하는데, 멕 라이언은 그러한 커리어 관리에 실패한 케이스였다. 현재의 인기를 유지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고만고만한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물에 출연해 이미지 소모를 하게 되었다. 뒤늦게 <프루프 오브 라이프> <인 더 컷> 같은 스릴러 성향의 작품에 출연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려 했으나, 혹평 반응과 흥행 실패를 연속으로 받게 되면서 할리우드에서의 그녀의 입지는 회복불가 수준으로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다. 


10. 추락의 시작이었던 한국 비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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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가 그녀의 경력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전성기의 그녀가 얼마나 프로답지 못한 인성과 태도를 지녔는지를 보여준 예시와도 같은 사건이었다. 한국에서의 논란은 결국 그녀의 해외 진출과 입지에 큰 타격을 주게 되면서 서서히 그녀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게 했다. 

90년대 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시작으로 멕 라이언의 영화는 대한민국 영화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프렌치 키스>와 같은 멕 라이언 표 영화가 극장가를 흔들게 되면서 멕 라이언을 향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날로 커지게 되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의 몇몇 흥행 실패작들도 한국에서 개봉하면 흥행할 정도로 국내 관겍에게는 믿고보는 배우였다. 최진실과 같은 당대의 스타에게는 '한국의 멕 라이언'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며, 머리부터 패션까지 그녀의 영화속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이같은 그녀의 인기를 반영하듯 멕 라이언은 1997년 동산 C&G 라는 한국 회사의 화장품 및 샴푸 브랜드인 섹시마일드의 CF에 출연하게 된다. 그녀가 직접 출연한 CF인 만큼 반응 또한 뜨거웠다. 

▲멕 라이언이 출연한 섹시마일드 CF

그리고 CF를 촬영한 한참 뒤인 6월, CBS의 유명 토크쇼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한 멕 라이언은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근황을 묻는 데이빗 레터맨의 질문에 멕 라이언은 CF 촬영을 한 근황을 전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비하하는듯한 발언을 하게 돼 물의를 빚게 되었다. "인도도 아닌 이상한 나라 제품의 광고를 찍게 되었는데 (실제 촬영은 미국에서 이뤄졌다.) 수녀복을 입고 한거라 뭘 한건지 잘 모르겠다. 너무 유치했다." 라고 비웃다가 "샴푸 이름이 섹시마일드라 한다 수녀복을 입는건 둘째 치고 제품 작명 부터가 웃겼다" 라며 자신이 광고한 제품까지 셀프 디스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당시 국내 회사들과 함께 작업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모델들이 한국에 애정을 보이며 제품에 대한 설명서 까지 확인하며 상세하게 설명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태도와 자세는 너무나 정반대였다.

당시 인터넷이 활발하게 보급되지 않은 시대였지만, AFKN을 비롯한 주한미군 방송과 PC 통신을 통해 이같은 소식이 한국인들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이는 곧바로 한국팬들의 분노로 이어지게 되었다.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게 된 순간으로 그녀에게 홍보를 부탁한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로 이어졌다. 여기에 국내 연예 매체까지 합세해 멕 라이언의 비하적 태도를 앞다퉈 보도해 사실상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이로인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게 되었지만, 한국팬들의 배신감은 이루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하필 이러한 논란이 발생한 시기가 그녀의 신작 <애딕티드 러브>와 <아나스타샤>의 국내 개봉이 예정된 시기였으니, 한국에서의 분노 소식을 뒤늦게 듲게된 멕 라이언측은 한국 방송과 매체를 통해 곧바로 사과하며, 한국식 인사 방식이 담긴 영상을 보내며 논란을 진화하려 했으나, 영화 흥행을 걱정해 급조한 사과 같다는 인식만 전해주며 냉담한 반응만 남기게 되었다. 

멕 라이언의 마지막 국내 흥행작은 1년 후 개봉한 <시티 오브 엔젤>로 이마저도 당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것에 불과했다. 이후 그녀의 영화는 더이상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했고, 극장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1. 불륜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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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지닌 데니스 퀘이드와 결혼해 아들을 출산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것으로 보였으나, 2000년 갑작스럽게 이혼 발표를 해 충격을 주게 되었다. 이혼 원인으로는 멕 라이언의 외도로 알려졌으며,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대상이 영화 <프루프 오브 라이프>에 함께 출연한 러셀 크로우였다는 사실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2008년 멕 라이언이 한 매체를 통해 불륜설을 시인하면서 유명해졌지만, 멕 라이언은 자신의 외도는 모두 데니스 퀘이드 때문이었다며 결혼 생화에서 발생한 그의 사생활에 대해 폭로했다. 사실 멕 라이언은 데니스 퀘이드와 오랜 연인 사이를 지속하면서 그의 마약 중독과 바람기를 다 참아주며 결혼하게 되었지만, 결혼 이후에도 방탕한 생활을 지속한 데니스 퀘이드의 태도에 실망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러셀 크로우와 멕 라이언 또한 불륜 관계라는 꼬리표에 못 이겨 결별하게 되었다.


12. 성형중독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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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59회 타오르미나 영화제에 참석해 과거 전성기 시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부쩍이나 부풀어진 입술과 그로 인한 어색한 미소는 보톡스, 성형 중독에 걸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세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53세, 하지만 멕 라이언은 자신을 향한 이러한 비난에 개의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남들이 어떻게 보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하며 이같은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자료참조:IMDB 트라비아, fame10.com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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