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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 괴물 신인들을 맞이한 그만의 대처는?

18.01.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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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이병헌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슈트 패션을 벗어나 츄리닝과 운동화와 같은 편안한 복장으로 이번 작업에 임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작품에서의 그의 모습은 오랜만에 밝고 유쾌한 모습이었으며, 그 또한 사람을 웃겨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조하는 마냥 유쾌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달콤한 인생]에서 느껴진 외로운 모습이 이번 작품에서도 느껴졌을 정도로 부모가 남긴 슬픈 상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동생의 짐까지 짊어진 애잔한 존재였다. 사랑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묵묵하게 배다른 동생을 챙기며 묵묵하게 살아가는 조하의 모습 속에서 이병헌이 추구하고자 한 그만의 캐릭터 구축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동안 입었던 슈트와 한복을 벗어 던지고, 츄리닝과 반팔같은 편한 복장을 입은 자유로운 영혼을 연기했다. 느낌이 어땠나?

(웃음) 하긴 [남한산성] 때도 그렇고, 사실 그동안 입었던 정장 슈트와 한복 의상이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내가 평소 집에서 입는 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복장을 입을수 있었다. 운동화와 슬리퍼만 신고 다녔으니 이동할 때도 편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분장을 안 하니 너무 좋았다. (웃음)


-짧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서 외모적인 부분에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부분도 남다르지 않았나?

원래 감독님이 생각했던 조하는 서먹서먹하면서도 지금보다 조금 더 거친 캐릭터였다. 그런데 실제로 감독님이 나에게 말씀하신게 "내가 각본을 쓰면서 완성한 캐릭터지만, 병헌씨가 하니까 느낌이 너무 달라. 상상한 것과 달라서 그게 좀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대본에서의 조하의 외모에 대한 설정이 주변인들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외모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민머리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강한 인상이 나오도록 신경 썼다. 


-블록버스터 물이 아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 나에게 각본이 도착했을 때 너무나 재미있었다. 조하의 정서도 나에게 너무 와닿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쓸쓸한 느낌이 참 인상적이었다. 주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영화의 코미디가 선을 넘지 않은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지나치게 억지 울음을 자아내지 않아서 드라마가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설정이 그리 기발한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특별함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어떻게 보면 뻔하고 익숙한 소재고 그런 뻔한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어떻게든 적정선을 지킨다. 어떤 장르 영화마다 공식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이 있고 좋은 놈이 어떻게든 이기고 정의가 어떻게든 실현되는 것이 그 영화의 공식이다. 그런데 그 공식을 누가 어떤 이야기로 어떤 디테일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진짜 그 긴 시간 동안 거의 똑같은 공식을 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것을 보여줘서 새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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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나눠줄 때 사람들이 못 알아봤다고 하는데, 정말인가?

생각보다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 놀랬다. (웃음) 일주일 동안 전단지를 나눠줬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못알아 보는 거였다. 나중에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눠줬는데도, 사람들이 못 알아보고 그냥 가는 거였다. 나중에는 장소를 바꿔가면서 했는데 같은 반응이었다. (웃음)


-이 영화의 형제는 기존 작품의 형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정을 나누는 사이이기보다는 인생의 선후배 같은 관계에 더 가까운것 같다. 그 흔한 포옹, 눈물을 나누는 장면이 없을 정도로 신파적 코드를 배제하고 철저히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에 집중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떤 형제 관을 보여줬다고 봐야 하는가?

나는 조하를 어른이지만, 마음은 10살짜리 아이 같은 소년이라 생각했다. 이 친구의 마음은 엄마가 떠난 그 시점에 멈춰있었다. 평소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부모가 남긴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래서 엄마와 재회 했을때도 어색함만 느낄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동생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현실적으로 본다면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족을 만나게 되면, 살갑게 맞아주는 게 기본이지만, 조하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조하가 마지막에 동생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색해 보이지만 그 만의 감정어린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동생이 생겼다는 행복감도 느꼈지만, 그럼에도 쓸쓸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신보다 동생을 더 챙겼던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복도씬이 쓸쓸해 보인 것인가?

에이 내가 애기해서 그렇게 느낀 건가? (웃음)


-오랜만에 따뜻한 영화에 출연해서 남달랐을 것 같다.

정말 신이 나고 즐거웠다. [남한산성] 할 때 느꼈던 기분과 조금 다른 카타르시스가 이 영화에 느껴졌다. 전자의 경우 역사라는 고증에 충실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 영화는 바로 우리 옆집의 이야기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함께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남겨 있기에 뿌듯함이 담겨있었으며, 나름의 감동과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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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연기보다는 실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영화에서 오버하는 것처럼 보였나? (웃음)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장면의 경우는 각본에 있었다. 사진 속 괴상한 포즈는 그냥 장난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하가 게임을 할 때 어린애처럼 보였듯이, 어느 순간 아이가 되고 싶어 할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을 때는 그렇게 본인의 본 모습이 나올 거라 봤다. 엄마가 그 사진을 액자로 보관하고 있듯이 그런 밝은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동생 진태역을 맡은 박정민 배우를 크게 칭찬해 줬다. 

함께 촬영할 때도 놀라웠는데, 어제 시사회를 보고 나서는 더 큰 감동을 받았다. 현장에서는 조용하고 점잖은 모습들만 봐왔는데, 그 친구가 했을 고민에 대해 알게 되니 더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정민이의 연기가 더 짠하게 다가왔다. 현장에서는 힘든티를 전혀 내지 않았는데, 결과물을 보니 알 것 같았다. 


-극 중 게임에서 시종일관 박정민에게 지기만 했는데, 실제 게임에서도 많이 졌나?

(웃음) 처음 콘솔 게임을 설치했을 때 스트프들과 돌아가면서 했는데, 그때는 내가 진태였다. (웃음) 스태프와 정민이 내가 다 이겼다. (웃음) 원래 게임 할 때 영화속 장면처럼 입과 몸이 함께 움직인다. 모니터를 보니 내가 너무 오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영화 속의 모습은 피터팬처럼 참 해맑은 소년 같았다.

아티스트와 배우들, 특히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구분을 짓는 어른과 아이는 우리가 만들어낸 경계라고 본다. 사실 그런 걸 누군가 구분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아이처럼 지내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는 어른스럽고 철든 모습을 보여줘야 해서 그 모습이 철없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장난 치고 싶은데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그 천진난만함을 잃어버려야 한다는 게 아깝다고 본다. 가끔 어떤 어르신과 이야기 할 때 이 사람에게 아이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 순간만큼 감동을 주는 순간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이 사람과 더 이야기하고 싶다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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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리, 박정민 등 젊은 배우들과 함께 어울려 삼총사가 된 조합이 꽤 흥미로웠다. 두 후배와 함께 있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셋이 함께 있을 때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정겨웠고, 그 셋이 모여서 티격태격하고 노는 모습들이 참 좋았다. 특히 최리가 연기한 수정이가 4차원적인 매력이 있어서 참 좋았다. (웃음) 난데없이 화내고, 허리 라인 자랑하는 모습이 진짜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마 같은 나잇대의 여배우들이라면 탐낼 역할이지 않을까? 함께 첫 촬영을 할때도 재미있는 순간이 있었다. 처음보는 애가 우리집에 와서 같이 게임하고 있을 때 추임새와 내가 다가갈 때 놀라는 모습이 다 최리의 애드립이었다. (웃음) 그런 것들이 캐릭터를 만들고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봤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조하도 이 모습을 자연스럽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함께 작업할 때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한지민과 멜로가 없어서 깔끔한 느낌이 있었다.

오히려 정민이와 한지민이 그런 관계였다고 할까? (웃음) 진태가 계속 한가율에게 예쁘다고 말하니까. (웃음) 원래 마지막 갈라쇼가 있기 전, 한가율이 진태를 교육시켜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때 한가율이 "진태는 나중에 뭐가 되고싶어?" 라고 묻게 되는데, 진태가 계속 "예뻐요" 하다가 나중에는 "한가율 하고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진태와 그런 러브 라인이 만들어 질 수도 있었고, 최리의 수정이와도 삼각관계가 나올 수도 있었다. (웃음) 


-박정민 배우가 이병헌 배우를 원래부터 존경해 왔다고 말했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민이는 정말 자기 관리를 잘하면서도 과묵한 친구다. 오히려 표현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스타일 같았다. 그런 모습이 믿음직스러웠고 참 의젓했다. [남한산성]이 개봉하고 나서 장문의 편지가 나에게 왔었는데, 정민이가 영화에서 내 연기를 보면서 느낀점들과 감동한 부분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그때 내가 "너 원래 이렇게 감성적인 친구가 아니잖아"라고 하면서 고맙다라고 답변해 줬다. 그때 참 나도 좋았다. 


-실력 있는 후배들이 연이어 등장해서 긴장되지 않은가?

그런 것에 자유로워지고 싶다. 부담을 갖고 억눌려지면 내가 부담을 느낄 수 있기에 작품을 할 때는 자유롭게 큰 도화지에 있는 기분으로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억눌리면 도화지처럼 작아질 수 있다. 정민이 같은 훌륭한 신인들이 계속 등장해 나에게 롤모델이라고 하면 내가 힘이 들어가게 된다. 고맙고 감사한건 마음에 두고 내가 내일 할 때는 자유롭게 연기해야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다. 내가 위축되면 후배들도 실망할 수 있으니까.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주)JK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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