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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리정원] 신수원 감독, 문근영 & 김태훈에게 가장 주문했던 연기는?

17.11.2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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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마돈나]를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신수원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으로 돌아왔다. 비록 전작에 버금갈 만한 큰 호응을 불러오진 못했지만, 문근영의 파격 변신과 전편보다 더 과감한 소재를 활용하며 장르적 변주를 이뤄냈다는 점에서는 꽤 도전적인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판타지와 드라마 그리고 섬뜩한 호러적 색채를 오가며 전하고자 한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매번 독특한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강조한 그녀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너무 많이 봐서 모르겠다. (웃음) 어쨌든 많이 긴장되었다. 개봉을 앞두고 어떻게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질까? 무엇보다 한국에서 판타지가 익숙하지 않은데, 관객들이 어떻게 이해할까 긴장했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나서, 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음) 자기가 세상에 나왔으니, 자기 힘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원래 감독들이 영화가 공개되면 유리멘탈이 된다. (웃음) 그러니 담담하게 관객들의 평가를 받아들이려 한다.  


-관객분들과 대화해 보니 어떤가?

어떤 분은 굉장히 빠져들어서 우셨고, 어떤 분은 설명이 필요하다며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른 한 분은 알아서 영화를 해석해 주시더라. (웃음) 그런데 오히려 그런게 재미있었다. 첫 번째 GV가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하는 시간이였는데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많이 오셔서 놀랬다. 아마 근영 씨 팬들이었는지…(웃음) 두 번째 행사는 공지를 미리해서 그런지 카메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 놀랬다. 팬분들 위주여서 그런지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팬분들의 질문 수준이 너무 높아서 또다시 놀랬다. 


-문근영 배우가 영화 공개 이후에도 아직도 캐릭터에 이입된 거 같다. 근영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와 특별히 주문한 연기가 있다면?

처음에는 근영 씨가 완전히 이입되지 않았다. 테스트 시사할 때 아예 울지 않았는데, 자신이 연기한 부분만 보다 보니 몰입을 못한 것 같았다. 두 번째 부산에서 상영되었을 때 되서야 영화를 처음 봤다고 했다. 끝나고 나서는 너무 슬프고 아름다웠다며 소감을 전했다. 근영 씨는 몰입을 잘하는 배우다. 그래서 숲 장면을 먼저 찍었다. 그걸 찍고나서 서울 장면을 찍었는데 그때 감정에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태훈씨 먼저 찍게 하고 근영 씨는 쉬게 했다. 그때서야 굉장히 몰입을 많이 하는 배우라 생각했다. 


-[유리정원]은 나무라는 테마를 강하게 끌고 가는 작품이다. 그 테마를 가져가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그게 가장 어려웠다. 나무도 이 영화의 의인화였던 셈이다. 실제 그 나무를 찾을 수 없어서 고목을 모형 2m의 CG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숲을 헌팅하면서 원하는 배경을 찾아야 했다. 이왕이면 신비로운 것을 찾아야 해서 겨우 찾았는데, 거기에 있는 주민들이 이 촬영현장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너무 유명해 지면 사람들이 몰리고, 이곳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에, 홍수가 난다 해서 촬영하는 걸 꺼렸다. 그래서 우리 제작부 직원 한 명이 그 동네에 살면서 주민들의 신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제야 촬영할 수 있었다. (웃음) 주민분들도 촬영장면을 보고 실제로 이런곳이 있었는지 놀랬다고 한다. (웃음) 영화에 나온 습지가 실제 습지이다 보니 일부 장면 촬영에는 조심히 작업해야 했다. 춤추는 장면의 경우에는 다른 숲에서 촬영한 장면인데, 다른 공간이지만 같은 공간인것처럼 그려져야 했다. 다행히 감정신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대신에 배우들이 주로 걷는 장면에 참여하다 보니 어려워하더라. (웃음) 덕분에 공간의 환타지가 잘 살아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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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과 소설가를 동일하게 만든 의도는?

소설가 같은 경우 직업 자체가 불완전하다. 과학도도 마찬가지다. 그 인물이 극단적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지 그려보고 싶었다. 지훈이란 인물이 아마 그런 인물이라 생각한다. 손이 굳고 그런 것은 경제적 결핍이자 신체적 결핍을 의미한다. 그러다 자신보다 약한 여자의 삶을 훔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워 나가게 된다. 그 스스로도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 것이다. [마돈나]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 억압한다면 우리 모두도 가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마 살면서도 다 그럴 것이다. 본의 아니게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기분 나쁜 일을 하거나 갈라질 때도 있다. 그러다 다시 돌아보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딜레마에 놓인 인물로 지훈을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태훈씨에게 극단적인 연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라고 했다. 그눈 자기 입장에서 선한 의도로 접근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그녀를 몰아세우게 된다. 


-전작 [마돈나] 처럼 타인이 같은 운명을 지닌 존재에 동정심을 갖게되는 전개방식이다. 동일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되는 이유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결핍을 가진 사람끼리 [마돈나]에서 연대를 했듯이, [유리정원]에서는 호기심을 갖고 접근을 했지만 결국에는 그녀의 공간을 파괴하게 된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서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변주로 바뀌게 된다. 결국에는 [마돈나]에서는 해림이 나의 분신이자 화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지훈이 나의 분신이라 해야겠다. 지훈처럼 그런 순간이 되면 그건 범죄 수준이 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로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스리려고 한다. 재연의 연구자적 행동도 사실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 영화는 재연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 지훈을 통해 재연을 다르게 보도록 하고 싶었다. 두 인물이 함께 있고 사건에 놓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도록 했다. 연대적 관계 같지만 결국 여기서는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섞이게 되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다.


-영화가 현실적 결말이 아닌 비현실적인 결말로 다가서게 된다. 

재연도 결국 편견의 피해자다. 영화의 마지막 지훈이 숲에 왔을 때 재연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된다. 어쩌면 재연은 자신의 성공을 누군가 봐주길 바랬을 것이다. 자신이 고집스럽게 끌고 간 일이 가치 있는 일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리정원]은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미저리] 식의 기괴함이 더해진 영화였다. 초반 주인공에 대해 동정 어린 시선을 지니고 있었던 감독님의 시선이 시간이 흐르면서 섬뜩함을 지닌 시선으로 바뀐 것 같다. 이유는?

사실 준비할 때 [미저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오히려 그 작품을 보면서 [미저리]처럼 가면 안 되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섬뜩한데 조금 슬펐으면 했다. 나는 인물을 세팅하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되뇌고는 한다. [미저리] 스타일의 영화는 내 영화가 아니다. 근영 씨에게 광기를 보여줘도 사이코처럼 하지 말라고 했다. [미저리]는 자기의 욕망 때문에 감금했다면 재연은 자신의 실험 때문에 스스로를 감금 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실험이 성공하지 못했고, 실험과 동떨어진 모습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그 부분과 관련해서 근영 씨에게 다양한 눈빛 연기를 요구했다. 태훈 씨 에게도 사이코 수준이 아닌 일반인의 욕망처럼 그려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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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녹혈구는 실제 과학적인 설정인가? 아니면 영화적 설정인가? 

거짓말이다. (웃음) 그런데 그럴듯하게 과학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자문을 구했다. 자문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 재연의 캐릭터와 지향하는 점에 소개하고 여기에 어울릴법한 연구 주제를 주문했더니 교수님께서 적혈구와 관련한 연구가 그럴듯해 보인다고 말씀주셨다. 그래서 녹혈구라는걸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실제 그런 연구는 없다고 한다. 다른 과학자와 교수님에게도 자문을 해봤더니 '가능, 불가능' 등의 호불호가 많았다. 그런데 영화 작업을 하면서 어떤 분이 제보하기를 시금치에 동물 세포를 넣어서 이식하는 연구가 실제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웃음)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아주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웃음) 


-주인공을 과학도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원래는 간호사였다. (웃음) 그런데 [마돈나] 찍고 또 병원으로 가기 싫어서 과학자로 바꾼 거였다. (웃음) 각본 작업을 하면서 과학 소재가 너무 재미있는 거였다.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가 "너는 이과 갈 애가 왜 문과 갔냐?" 라고 말할 정도였다. (웃음) 


-교육, 여성, 자본 혹은 생명 등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과거 작품속에 담겨있었다.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나 주제는?

어렵네…(웃음) 지금은 묵직한 소재보다는 평범한 드라마를 하고 싶다. 나같이 나이 많은 기성세대이자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 


-엘리트 집단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계속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 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근데 그들의 세계가 참 이해하기 힘든 세계였다. 실패할 수도 있는 박사 과정에 10년이 넘도록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아가면서 희망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다. 예전 한창 IT 붐이 한창이었을 때, 카페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옆에서 과학 교수님하고 비즈니스맨이 대화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업가가 순진한 과학자를 꼬드기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이공계에 아는 분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과학자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면 기업의 협찬과 도움을 받기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순수 연구를 위해 지원되어야 할 과학이 자본에 의해 실용적인 학문으로 변해버렸고, 그로인해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실제로 연구생들이 돈을 못 구해서 극 중 재연과 같은 조그마한 방에서 지내며 어렵게 산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과학자들이나 다 동일한 운명인 것 처럼 느껴졌고, 그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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