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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리뷰:공포, 절망, 슬픔, 안타까움의 총집합 ★★★☆

16.11.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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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2016]
감독:박정우
출연:김남길, 김영애, 문정희, 정진영, 김대명, 강신일, 유승목, 김주현, 김영민

줄거리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믿고 있던 컨트롤 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극에 달하고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인 ‘재혁’과 그의 동료들은 목숨 건 사투를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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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시'라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대재앙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박정우 감독은 이번 신작에도 흔하지 않은 특별한 소재를 다루려 했다. [판도라]는 '원전 폭파'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최악의 순간을 통해, 전작 [연가시]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체감적인 공포와 재앙적 장면을 선보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한 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고수한 덕분에 [판도라]는 얼마 전 개봉한 [부산행]의 몇 배 이상의 공포와 재앙에 대한 여운을 불러온다. 아마도 이 때문에 영화 개봉 이후 대한민국에 밀집된 '원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판도라]는 시작부터 낙천적인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보여주며 가볍게 시작하다 얼마 안 가 재앙이 발생하는 전형적인 과정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지진으로 시작된 재난이 '원전'에 타격을 주는 2차 위기로 이어지게 되면서, 이 영화가 보통의 재난 물과 차원이 다름을 드러내려 한다. [판도라]의 재난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차적인 형식으로 위기에 또 다른 위기가 이어지게 되는 불운의 지속이다.       

극 중 인물들에게는 절망적 순간이지만, 영화적으로는 놓치지 말아야 할 타이밍이다. 위기가 예정된 이 상황을 긴박하게 그려낸다면 재난 물이 지닌 긴장감의 강도는 가히 최고도에 달하기에 이른다. 박정우 감독과 제작진은 바로 그러한 타이밍을 절묘하게 다뤘다. 지진으로 인해 원전의 안전장치에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방어하려는 원전 직원들과 아비규환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를 긴박하게 오가며 최악 순간의 공포를 서서히 높여준다. 폭파의 순간을 막기 위한 여러 방법이 동원되지만, 위기는 숨 막힐 정도로 서서히 다가온다. 

'1분 1초'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위기 상황은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져 영화가 끝난 이후에는 서늘한 느낌까지 자아낸다. 그러한 설정이 가능했던 것은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실제 원전사고에서 나왔던 방사능 유출이라는 현실적인 재앙이 현실감 있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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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이는 대재앙의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고, 원전 주변에 있는 구조대를 쓰러뜨림으로써 모든 희망마저 앗아가게 한다. 신체적 타격은 물론이고, 생존자들에게 정신적, 심리적 상태의 공황을 주는 장면을 모두 동원해 '원전' 사고와 관련한 모든 재앙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판도라]의 초점은 사건 현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원전 사태가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을 그려내며, 답답하고 안타까운 감정까지 불러오게 한다. 

젊은 패기와 달리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는 대통령, 사태 수습보다는 은폐에 집중하는 총리와 내각, 부서별 이익과 이해타산을 우선시하는 공기업과 행정부의 행태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아 관객에게 더한 분노와 답답함을 불러오게 한다.

그러한 정부의 무능이 방사능에 영향권에 벗어나 있는 국민과 해외에까지 영향을 주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묘사돼, 사람이 만들어낸 심리적 공포 의 형상화를 보여준다. 

지속되는 긴장감, 공포, 안타까움의 연속으로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중반부터 불러온 [판도라]는 재난 물이 지니고 있는 가족드라마의 정서도 놓치지 않는다. 뻔하게 느껴질 법한 정서적 드라마의 등장이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 주연부터 조연까지 혼신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열연과 상황에 따른 재앙 상황이 전형적인 순간을 더욱 애틋한 정서로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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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판도라]의 드라마는 가족적 정서의 친근함에 기대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희생'의 가치에 더욱 중점을 둬 마지막에는 비장감이 서려 있는 장면들을 완성한다. 최종 결말에서는 카타르시스와 안신의 여운이 남겨지는 것이 재난물의 법칙이지만, [판도라]의 후반부는 숙연하면서도 한숨이 서려있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아마도 그것은 21세기 재앙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과 헐리웃식 영웅주의적 패권의 현실적 괴리감에 대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러닝타임 동안 인상적인 순간과 긴장감을 지속했던 [판도라]의 아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동안 언급한 장점에 있다. 흥미와 정서적 요인에 대한 호흡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다. 

긴장감의 연속을 이어나간 건 나쁘지 않지만, 중후반부터 너무 많은 인물들에 대한 정서적 감정을 담으려 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정서적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방사선에 대한 위기 상황이 너무 길게 그려진 탓에 후반 들어서는 긴장감이 떨어지게 되고, 드라마는 지나칠 정도로 묵직하게 이어진다. 아무리 비장한 순간이어도 관객이 이 부분을 좀 더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가벼운 요인의 정서가 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완벽한 재앙 물이라 불리기에는 2%가 아쉬운 영화지만, 현실적인 재앙 묘사를 위해 오랜 자료 조사와 비주얼 표현과 인간적인 연기를 선보인 제작진과 출연진의 노력이 잘 담겨진 작품인 점은 분명하다.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충분히 불러올 영화라는 점에서, [부산행]과 함께 한국 재난 영화의 대표작으로 남겨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판도라]는 12월 7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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