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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연기인생 가장 힘든 역할이었다"

16.09.30 09:59


[죽여주는 여자]의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난 이틀 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주인공 소영을 연기한 윤여정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매번 담담한 어조와 중년 배우 특유의 중후함을 지닌 매력을 보여주던 그녀는 이번 작품만큼 후유증이 오래가는 작품이 없었다며 남다른 고충을 토로했다. 

1970년대 김기영이라는 희대의 기인 같은 감독과 함께 여러 힘든 작품을 함께 하며 쉽지 않은 연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던 그녀지만, '성매매'와 '죽음'이라는 사회가 외면한 민감한 문제를 직접 마주하는 것이 매우 고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힘든 시기는 다 지나간 지 오래라고 말하며 인터뷰 내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베테랑 중년 배우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난과도 같은 우울증을 이겨낸 그녀에게 이번 [죽여주는 여자]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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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계속 힘든 배역만 맡아서 하시나?

그러게 말이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내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웃음)


-각본을 처음 마주 했을 때의 소감은?

이재용 감독이 작업 중인 내용이라고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완성본을 나에게 보여주더니 내가 적임자라고 했다. (웃음) 각본을 읽다보니 아무래도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했고, 이재용 감독을 믿고 있었기에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 

 
-박카스 할머니들에 대해 따로 연구한 게 있으셨나?

안했다. 그분들은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는 분들이셔서, 멀리서 만 바라봤다. 배우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나? 극 중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는 메소드 방식이 그중 하나라면, 내 방식은 "내가 만약 이 여자라면?" 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그런 방식으로 연기했다. 


-영화의 배경이자 주요 촬영장이었던 종로 일대를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바깥 풍경은 괜찮았다. 하지만 성매매가 이뤄지는 모텔 내부와 건물에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나서 고생을 많이 했다. 나중에는 식사도 못 했는데, 매니저가 급하게 사온 와인을 마시고 나서야 음식을 삼킬 수 있었다. 어쨌거나 배경이 되는 건물 내부와 환경이 그리 좋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촬영 기간인 두 달 동안 힘들었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 할머니들도 어렸을 때부터 누구의 소중한 사람들로 태어났을 건데 결국 이렇게 내몰려서 손가락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생각을 하며 배역에 빠지다 보니 촬영 후에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을증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눠봤나?

말 안 했다. 미워서… (웃음) 그럼에도 이재용 감독의 영화가 좋은 점이 있다면, 자칫 어둡게 풀어낼수 있는 영화를 따뜻한 정서로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사회적 소수자들끼리 한곳에 어울리며 따뜻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대한 유머와 위트가 담겨있다. 


-감독님이 매우 치밀하게 주문하셨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요청이 있다면?

성매매 장면에 대한 리얼함을 강조했다. 극 중 상대의 은밀한 부분에 주사를 넣는 장면이 있는데, 그러한 장면을 막상 마주하게 되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남자 조감독에게 "정말 여기에 주사를 넣어도 되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조감독이 "저는 아직 젊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더라. (웃음)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여러 번 NG가 나왔는데, 이 감독 기준에서 너무 리얼하지 않다는 거였다. 그는 주사기의 구조와 위치까지 일일이 체크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 화를 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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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소영의 남다른 의상도 돋보였다. 어떻게 정했나?

내가 아니라 감독이 정한 거였다. (웃음) 패션부터 헤어스타일 까지 770년대 유행이어서 사람들이 혼돈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재용 감독은 캐릭터의 특성과 내면을 상징하기 위해 이러한 스타일을 유지하자고 주장했다. 1970년대는 소영이 동두천에서 일한 시기로 희망이 있었던 시기 였을 것이다. 미군들을 상대하다 한 남성을 만나게 되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되면서 가정을 꾸릴 꿈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70년대 의상은 희망을 상징하는 것과 같았으며, 나이든 지금도 그때의 희망을 놓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앞머리를 내린 헤어스타일의 경우에는 나는 싫다고 했는데, 감독이 그게 더 고집하더라. 아무래도 쫌이라도 어리게 보여서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그러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주인공 소영은 고양이와 소수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챙기는 성격이다. 약한 사람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관은 무엇이라 정의했나?

작품 속에 나온 대사처럼 아마도 그녀에게는 어떠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녀는 자신의 사연에 대한 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여러 약자를 본능적으로 돌보려 했을 것이다. 


-소영의 삶은 남자들 때문에 이렇게 망가진 건데, 죽음까지 도와준 이유는 무엇인가?

전무송 선배도 그 점이 참 재미있다며 "소영이는 천사야"라고 언급하더라. 이재용 감독과 소영 캐릭터에 대해 논의해 봤는데, 소영이 정말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죽일 수 있다였다. 과거부터 알고지낸 고객이 죽어가고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 자신도 얼마나 괴롭게 보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죽일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소영은 조력 자살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고 나서 조용히 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 대해서도 많이 논의했다. 그때 감독님 생각은 쿨하게 죽이자라는 거였다. 그런데 어떻게 처음 사람을 그렇게 죽이겠는가? 입에서 거품이 나오는 걸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있겠는가? 여자가 무력할 때 할 수 있는게 우는 거라 생각해 감독에게 이야기해 울도록 설정했다.


-이태원 집은 허름하지만, 아주 따뜻한 정서가 느껴졌다.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계상이는 너무 착하더라. 실제 트랜스젠더인 안아주는 매우 똑똑했고, 코피노를 연기한 현준이는 잘 준비하고 연기했다. 계상이는 현준이가 진짜 코피노인줄 알고 이틀간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웃음)


-강도 높은 연기 탓인지 신인 배우 시절 출연한 김기영 감독님의 작품 속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도 비교적 센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때 당시와 지금의 연기 강도를 비교하자면 어떤 작품이 더 어려웠나?

그 때의 기억들을 다 잊어버렸다. (웃음) 물론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김기영 감독님을 진짜 변태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지. (웃음) 조만간 그  분 영화 상영회가 있다고 하니, 그때 또 참석할 예정이다.


-그런 연기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시나?

사실 배우들이 캐릭터의 후유증에 빠져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콧방귀를 뀌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힘들더라. (웃음) 모르고 살아도 될 일을 직접 경험해 봤잖아요. 그래서 나는 잔인하고 슬픈 영화나 드라마는 잘 안 보는 편이다. 최대한 즐겁고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보고 즐긴다. 그리고 친한 지인들을 만나 수다 떨고 이야기하며 극복한다. 그래서 이번에 나를 힘들게 만든 이재용 감독이 참 밉다. (웃음)


-그럼 이재용 감독이 차기작 제안을 하면 안 할건가?

해야지. (웃음) 미워한다기보다는 야속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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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촬영 이후 삶에 대한 태도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주었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쉽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죽음이란 것도 사물의 자연스러움처럼 꽃이 피고 싹이 지는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얼마전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도서를 읽고나서 느낀건데 나의 일을 하면서 죽는것, 바로 배우 일을 하다 죽을 수 있으면 참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아는 지인이 죽는 걸 본적이 있는데, 참 무섭더라. 생명과 목숨은 살려는 의지가 있기에 끈을 놓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그러한 끈을 놓으려고 훈련하는 것이 삶이라 생각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노인 복지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는지?

내가 무슨 복지부 장관도 아니구 그런 걸 왜 묻나? (웃음) 국가를 원망하기보다는 외국은 다 대책이 있고, 우리는 지금 시작하는 단계니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 그래도 우리가 이런 영화를 하고 있으니까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한 반응을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얼마전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 8]을 보다가 등장하시는 걸 보고 놀랐다.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

사연이 좀 길다. 어느 날 [센스 8]의 한국 캐스팅 디렉터에게 전화가 왔다. 워쇼스키 자매가 제작, 연출하는 작품이라며 영어로 대사를 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제안이 들어온 역할은 배두나의 할머니로 이야기듣고 곧바로 출연 승낙을 했다. 근데 며칠후 디렉터에게 전화가 오더니 그 배역이 대본 상에서 사라져서 대신에 죄수 역할을 맡아달라고 하는 거였다. 

'죄수 1, 죄수 2…' 이렇게 나오는게 쫌 그래서 아무래도 출연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디렉터도 그 점을 이해한다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저는 선생님 같은 배우가 대한민국에도 있다는 걸 라나 워쇼스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였다.

그 말이 너무 예뻐서 내 마음이 움직였고 대본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내 배역이 이름이 '민정'으로 되어 있는게 안심이어서 "그래도 이름은 있군요."라고 말하며 출연을 승낙했다. (웃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그 캐스팅 디렉터가 아니었다면 출연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 [센스 8] 시즌 2 촬영에도 합류했는데, 한 여름날 촬영해서 죽는 줄 알았다. (웃음) 정말 감옥 갈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죄수복이 참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웃음) 


-이후의 목표는?

없다. 인생이 목표대로 되지 않더라 (웃음) 그래서 앞만 보며 일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최근에 본 영화가 있으신지?

최신 작품들을 잘 보지 않아서… (웃음) 최근에 푹 빠진 외국 배우가 있다. 스티븐 호킹을 정말 생생하게 연기했던 영국 배우 에디 레드메인인데,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웃음) 그게 바로 배우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죽여주는 여자]는 10월 6일 개봉한다.

사진제공:앤드크레딧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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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작가 도훈,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 힘들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증으로 쓰러진 송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앤드크레딧, KAFA/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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