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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리뷰:'헬조선'의 [설국열차] ★★★★

16.07.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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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2016]
감독:연상호
출연:공유, 정유미, 마동석, 최우식, 안소희, 김의성, 김수안

줄거리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대한민국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단 하나의 안전한 도시 부산까지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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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산행]의 메인 예고편을 처음 접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감염자들이 떼로 달려오는 단 한 장면에서 이 영화가 [월드워 Z]의 아류를 지칭한 작품 같았기 때문이다. 감염, 고어 물에 익숙한 영화팬이라면 아마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공개된 [부산행]의 외형적인 비주얼과 일부 설정은 [월드워 Z]를 비롯한 여타의 비슷한 장르물에서 쓰인 소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뛰어다니고 때로 몰려 산을 이루는 감염자들, 무차별적으로 번지는 전염병의 특성, 의문의 실험으로 시작된 전염,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긴장감과 풍자 등 예상했던 요소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전형성에 묻힌 영화인데도 이상하리만큼 특별한 느낌을 주고 있다. 여타의 작품 속 장면과 설정이 뒤범벅되었지만, 어느 대재앙 영화에서 느끼기 힘든 특별한 정서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샐러리맨 캐릭터,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는 무책임한 정부와 치안기관, 대를 위한 명분으로 소수를 희생시키는 집단의 아집은 오늘날 성장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실성을 그려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부산행]은 이처럼 전형화된 설정 속에서 연상호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사이비]가 지닌 사회적 메시지와 상징을 담아, 오늘날 대한민국과 자본사회가 촉발한 대재앙의 의미를 부각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월드워 Z]의 소름 끼치는 공포로 대변된 인간 탑이 [부산행]에서 경쟁사회의 이면을 들춰낸 상징이 되고, 감염 재앙 물의 공포 적 장치로 쓰인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큰 의미가 담긴 장면들이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게 그려지는 대상은 바로 살아있는 인간. 정상적인 이성과 감성을 지녔지만, 공포에 지배돼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추악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생존자 집단은 자본사회의 이면이 만들어낸 가장 무서운 '감염자'들로 표현된다.  

이처럼 지금의 현실을 감염 장면과 재앙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부산행]이 의도한 공포 적 장면들은 절망적이자, 서글픈 감정을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만들어낸 계급사회의 풍자와 세계에 대한 묘사가 절로 연상되는 건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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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인 요인과 함께 [부산행]의 가장 큰 매력은 폐쇄형이자 일렬 형태로 구성된 열차 안에서 발생하는 스릴과 서스펜서. 이는 이 영화를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볼 수 있게 만든 주요 요인이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된다. 

열차 안에서 발생하는 전염을 시작으로, 감염자들이 서서히 증가하는 장면은 혼돈의 현장으로 표현돼 외부로 탈출할 수 없는 폐쇄형 공포의 묘미를 극대화했다. 여기에 게임과 같은 상황과 법칙을 설정해 흥미를 배가시킨 장면들도 눈에 띈다. 

움직이는 사물과 어둠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염자들의 특성을 이용해 탈출하는 생존자들의 모습과 새로운 역에 도착할 때마다 위험천만한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도 나름의 공포와 순도 높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압권은 다른 칸에 있는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테이프를 붙인 채 칸마다 있는 감염자들과 육탄으로 부딪치는 액션신으로, 총이 아닌 야구 방망이, 방패, 맨주먹으로 상대하는 한국형 감염 재앙 액션의 특징을 보여주며, 처절하고 긴박한 영화의 정서를 자극한다. 

고어, 감염 영화를 지향하지만 잔인한 장면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점에서 볼 때 [부산행]은 고어 매니아 보다는 대중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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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적인 주제관과 처절한 액션이 담긴 만큼, 캐릭터들의 역할도 강렬하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 인물들 모두 선과 악의 이중성을 지닌 이기적인 성향의 인간들로 그려냈다는 점. 영화는 위기 상황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집중도 있게 그려내며, 위기의 순간 본성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모습을 유심 있게 담아낸다. 

주요 인물들은 초반부터 이기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시간이 흘러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타적인 성향으로 바뀌게 되고, 영화는 그들을 통해 드라마를 완성한다. 일부 캐릭터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이면서도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며 감염자보다 더 무서운 악역이 된다.

공유의 캐릭터는 돋보이지 않지만, 딸과 생존자들을 위해 점차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부산행]의 주제와 부합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동석은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액션과 유머를 선사하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가장 돋보이는 배우와 캐릭터는 김의성이 연기한 악랄한 자본가로, 그가 그동안 선보인 악역 캐릭터의 성향을 집약시킨 인물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의 캐릭터는 계급 사회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자 성장 만능주의를 고집한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로 그려진다. 

그 외 최우식, 안소희, 정유미, 김수안이 연기하는 배역들도 존재감을 보이지만, 일부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미흡했던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    

[부산행]은 후반부에 사건이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을 공개하며, 우리의 현실 세계가 만들어내고 있는 작금의 재앙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실체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것이지만, '헬조선'이라는 풍자적 단어로 정의된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배한 보이지 않는 재앙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감염되었거나, 살기 위해 추악한 발버둥을 치고 있지 않은지를 되묻는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될 서글픈 여운을 남긴다.

[부산행]은 7월 20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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