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영화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자신의 배역을 최대한 섹시'한 매력이 가득한 캐릭터를 선보이려 한다. 원작에서 구현된 이미지를 강렬한 인상으로 현실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섹시함'만큼 주된 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광한 히어로 캐릭터들은 대부분 이러한 모습들이 다분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히어로 영화에서 최고의 섹시미를 선보인 캐릭터와 배우를 꼽으라면 대부분 누구를 언급하게 될까? 만약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스스럼없이 [배트맨 2]의 '캣우먼'과 이를 연기한 미셸 파이퍼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가 영화에서 파격 노출을 선보여서? 아니, 오히려 그녀는 온몸에 슈트를 꽉 껴 입고 등장해 노출을 안 하다 싶이했다.
애초에 미셸 파이퍼는 캣우먼의 섹시함 따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가 연기한 캣우먼은 길들지 않는 야생 고양이 그 자체였으며 사람으로 치면 요염함 속에 살벌한 본능을 숨긴 팜므파탈 이었다.
[배트맨 2, 1992]
감독: 팀 버튼
출연: 마이클 키튼, 대니 드비토, 미셸 파이퍼
부패와 탐욕으로 이미 썩어질 대로 썩은 고담시. 그 부패함과 타락이 낳은 기형아 펭귄(대니 드비토)이 악당이 되어 도시를 위기에 빠뜨리고 배트맨(마이클 키튼)은 홀로 이를 제압하려 한다. 드디어 만난 배트맨과 팽귄. 팽팽한 긴장감이 오간 가운데 느닷없이 캣우먼(미셸 파이퍼)이 등장한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건물 한 채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쑥대밭이 된다. 펭귄이 자리를 뜬 사이, 배트맨은 옆 건물 옥상으로 몸을 피한 캣우먼을 쫓아가게 된다. 옥상에 올라온 배트맨을 맞이한 것은 날렵한 몸놀림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한 캣우먼의 공격이었다.
캣우먼의 위협적인 공격에 당황한 배트맨이었지만, 그녀의 공격에 곧바로 일격을 가하게 된다. 배트맨의 공격에 쓰러진 캣우먼은 애절한 눈빛으로 배트맨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럴 수가! 난 여자야!"
캣우먼의 연약한 모습에 배트맨은 사과하며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곧바로 캣우먼의 발길질을 당하게 되고, 옥상으로 추락할 위기에 빠지게 된다. 채찍으로 배트맨을 매달은 캣우먼은 자신에게 당한 배트맨이 멍청하다 듯이 바라보며 비웃으며 말한다.
"난 여자란 말이야. 그러니까 깔보면 안 돼. 삶이란 힘든 거야 나 역시도"
캣우먼이 자아에 도취 된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자 배트맨은 자신의 몸에 부착된 특수물질을 캣우먼을 향해 던진다. 캣우먼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해 옥상으로 미끄러지게 되고 배트맨은 추락 직전의 그녀를 한쪽 팔로 잡아낸다. 배트맨의 품에 안긴 채 무사히 건물 위에 올려진 그녀는 다시 한 번 관능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은 대체 누구지? 가면 뒤의 얼굴은? 너의 정체를 알려줘."
라고 말하며 슈트에 가려진 배트맨의 몸을 이리저리 쓰다듬기 시작한다. 자신과 같은 슈트를 입은 여성에 접근에 배트맨은 당황스럽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을 피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슈트 속에 자신의 두려움과 나약한 모습을 감춘 배트맨은 자신을 쓰다듬어 주는 여자의 손길을 잠시나마 애정이 어린 감정을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여자의 본능을 미리 경고한 캣우먼의 말이 그랬듯이 배트맨은 그녀의 함정에 다시 한 번 걸려들었다. 캣우먼은 슈트의 약한 부위를 찾아내 그곳에 자신의 발톱을 찔러 넣어 배트맨을 부상 입힌다.
캣우먼의 공격을 받은 배트맨은 캣우먼을 내리쳐 건물로 추락시키게 되고, 그녀는 지나가는 트럭 위 모레를 통해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은 팜므파탈의 전형을 행위를 통해 표현한 캐릭터 였다. 꽉 낀 가죽옷은 그녀의 전신을 그대로 드러낸 듯 했다. 이를 통해 표현되는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장면은 요염함을 느끼게 했다. 캣우먼의 이런 모습에 배트맨을 비롯한 남자들은 유혹을 느끼기 마련, 하지만 이는 그 다음을 비수를 꽂기 위한 미끼였다. 잠시나마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든 남자 관객들도 갑작스러운 그녀의 공격에 깜짝 놀라게 되고, 이후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묘한 긴장감과 살벌함이 느껴지게 된다. 팀버튼이 완성한 괴상한 어둠의 세계가 무섭게 묘사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캣우먼 특유의 섹시함과 살벌함이 극대화되는 장면은 영화 중반 등장하는 죽음의 키스 장면이 대표적이다.
펭귄의 계략에 걸려든 배트맨은 경찰들이 쏜 총에 맞아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쓰러진 배트맨의 바로 위로 캣우먼이 유유히 걸어와 배트맨의 몸 위에 엎드린 채 마주하게 된다. 남녀의 정사(情事)를 연상케 하는 에로틱한 자세지만 "또 내 먹이가 됐군" 이라는 말과 함께 배트맨의 얼굴을 긴 혀로 핥는 장면은 먹이를 먹으려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그다음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긴장감을 높여주었다.
캣우먼의 이러한 죽음의 유혹은 [배트맨 2]의 초반부 장면을 본 이들에게는 수긍이 되는 설정이다.
캣우먼이 되기 전 평범한 여성 셀레나 카일이었던 그녀는 회사, 가정, 사람 관계, 사회에서 요구하는 압박 때문에 자아를 잃어버린 별 볼 일 없는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사회를 대변한 직장 상사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고양이들 부터 목숨을 얻게돼 세상을 향해 복수하게 된다. 그녀의 팜므파탈적인 공격은 자신을 죽인 남성들을 향한 복수이자 세상이 자신에게 행한 살인 방식에 대한 모방이었다.
매혹적인 섹시함과 공포가 공존하는 이 장면은 이와 같은 서글픈 감성이 담겨 있었다. 전자에서 언급한 캣우먼의 대사 중 "삶이란 힘든거야 나 역시도" 라는 장면은 그녀의 인간이었을 때의 삶을 의미하는 부분이었다. 그 때문인지 무섭고 잔인한 그녀지만, 그 장면 속에서 보여준 애정어린 눈빛만은 진심으로 보였다. 그러한 다중적인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기에 지금도 [배트맨 2]의 캣우먼은 여전히 섹시했고 사랑스러웠다.
이러한 캣우먼의 모습을 현재 기획 중인 DC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통해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직 캣우먼 등장과 관련한 계획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