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크롤러, 2015]
감독:댄 길로이
주연:제이크 질렌할, 르네 루소
줄거리
루이스 (제이크 질렌할)는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특종이 될 만한 사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TV 매체에 고가에 팔아 넘기는 일명 ‘나이트 크롤러’를 보게 된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빠르게 나타나 현장을 스케치하고 전화를 통해 가격을 흥정하는 그들에게서 묘한 돈 냄새를 맡은 루이스는 즉시 캠코더와 경찰 무전기를 구입하고 사건현장에 뛰어든다. 유혈이 난무하는 끔찍한 사고 현장을 적나라하게 촬영해 첫 거래에 성공한 루이스는 남다른 감각으로 지역채널의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매번 더욱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뉴스를 원하는 니나와 그 이상을 충족 시켜주는 루이스는 최상의 시청률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한다. 자신의 촬영에 도취된 루이스는 결국 완벽한 특종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르는데…
'괴물 같은 인간'이라는 단어가 있다.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을 지칭하는 의미지만, 목적에 사로잡혀 선과 악의 정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선을 넘어버린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의 영화들이 전문적으로 다룬 악인의 표본이 되고는 하였다.
[나이트 크롤러]는 바로 미디어 분야의 괴물이자 '惡'을 상징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렸다. 얼핏 들으면 루퍼트 머독과 같은 '언론 재벌'에 대한 풍자로 보이겠지만, 영화가 접근하려는 악은 이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다. 영화는 바로 이 근원적인 악이 미디어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한편의 르포물과 같다.
주인공 루이스 블룸은 절도에 타고난 천성을 지닌 인물이다. 길가의 철조망, 맨홀 뚜껑, 구리선을 몰래 훔쳐 고물상에 팔아넘기는 그는 경영학 교육에서 가르치는 기초적 지식의 문구를 인용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궤변가 적 재능을 갖고 있다.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데 타고난 재주를 지닌 그의 운명은 어느 날 '카메라'를 만나면서부터 달라진다. 처음 '돈' 자체를 원해 시작한 영상 촬영이었지만, 돈 이상의 가치를 낼 수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촬영한 선정적인 사고 영상에 방송국은 혈안이 되며 그에게 큰돈을 지급하게 되고, 문제의 영상에 수많은 시청자가 달려와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영상 촬영은 생계 차원을 넘은 야망이자 권력인 셈이다.
루이스 블룸이 이러한 돈의 맛과 쾌감을 느끼게 되면서 영화는 서서히 그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나이트 크롤러]가 지닌 흥미의 대상이다.
그가 촬영하는 영상은 '자극' 차원을 넘어선 매우 위험한 수준에 이르게 되고, 영상을 위해서 범죄 현장 잠입과 같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된다. [나이트 크롤러]는 주인공의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하며 자연스럽게 영화의 흥미를 높이는 데 성공한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촬영 장면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러오며, 화면을 통해 보이는 자극적인 영상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방송 시청자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루이스의 촬영이 위험수위를 넘어설 때 자연스럽게 그의 심리도 극도의 상태로 치달으며 예측 불허의 순간에까지 이르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하며, 작품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무난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과정은 선정성과 왜곡을 통해 성장한 미디어의 현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알 권리와 사회 정의라는 '궤변'하에 선정성과 왜곡을 강행하는 방송 권력, 이러한 쾌감에 도취되 괴물이 되어가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촬영자, 그들이 만들어낸 영상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시청자, 이 삼박자가 하나가 되어 부패한 미디어 산업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이 이룬 것은 사회 정의와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언론'이 아닌 '자본'이었다.
[나이트 크롤러]가 정조준 한 악의 근원은 미디어가 아닌 불합리한 자본주의 문화의 병폐다. 시청률에 의해 미디어의 수익이 좌지우지되자 방송국은 촬영자들에게 선정적인 영상을 주문하고, 촬영자들은 영상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승리를 위해 자신들만의 고용 시스템을 만든다. 이는 루이스 블룸과 그가 고용하게 된 직원의 관계를 통해 쉽게 정의된다. 루이스가 인턴십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부하 직원을 착취하고 위협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을 관계'의 한 단면을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의 탐욕에 착취당한 그가 또 다른 누군가를 착취하며 자신의 경영 철학을 강요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함 그 자체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후의 촬영신은 그러한 미디어와 자본의 부패가 만들어낸 비극을 상징하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시작부터 끌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전개와 역동적인 편집,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완성되는 상징적인 화면구성은 [나이트 크롤러]를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지닌 사회파 스릴러물로 완성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이크 질렌할의 열연이 있었다. 13kg 체중감량을 통해 완성한 수척해진 그의 외형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극단적 인간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줘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여기에 빠르면서도 차분한 대사 톤과 시종일관 냉정한 감정을 유지하는 모습은 소시오패스적 성격을 지닌 악역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가 연기한 루이스 블룸은 미디어와 자본의 이면이자 그러한 탐욕이 만들어낸 괴물 그 자체였다.
[나이트 크롤러]는 단순한 비판과 풍자를 넘어 언론/미디어 분야에 있는 모든 종사자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지녔다. 아마도 언론/미디어 분야의 종사자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루이스 블룸의 모습에서 묘한 공감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의 정의와 올바른 정보 전달이라는 사명을 지닌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이같은 괴물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기사를 쓴 나 자신부터 그동안 해온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준 의미 있는 영화였다.
[나이트 크롤러]는 2월 26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