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로빈 윌리엄스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그와 관련된 추모기사를 준비하기 위해 그의 과거 작품과 필모그래피를 확인하던 중 반가운 작품 한편을 접하게 되었다. 유년기 시절 TV에서 방영한 주말의 명화를 통해 접했던 영화로 그 당시 나에게 있어 엄청난 비주얼적인 충격과 상상력 위대함을 선사해 주었던 작품이었다. 그 영화는 1988년 작품 [바론의 대모험] 이라는 작품으로 그 당시 영화의 제목조차 몰랐었던 기억 속의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브라질] [12 몽키즈]의 테리 길리엄이 연출한 작품으로 [시간도둑들] [브라질]에 이은 상상의 세계를 소재로 한 3부작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었다. 줄거리와 장르는 바론 뮌하우젠 남작(존 네빌)과 초능력 부하 4인 그리고 그를 남작을 따라다니는 소녀 샐리(사라 폴리)의 기상천외한 모험을 그린 어드벤처 판타지를 지향한다. 1600~1700년대의 유럽을 배경으로 두고 있지만, 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테리 길리엄의 7,80년 작품을 경험해본 이라면 그만이 가진 독특한 비주얼 철학, 시각효과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단순한 시각적인 재미를 떠나 한편의 초현실적 화풍을 연상시키는 시각효과는 한편의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론의 대모험]은 그러한 테리 길리엄 '상상의 세계'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영화는 지금 봐도 신기하게 여겨질 신비스러운 시각효과를 내세워 상영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수백 척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 자유자재로 공중으로 흔드는 장면, 발사되는 대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 그리고 달나라, 발칸이 사는 지구의 중심, 물고기 뱃속에 대한 묘사는 [스타트렉] [호빗]의 제작진도 울고 가게 하는 놀라운 상상력의 극치였다. ( CG가 아닌 세트, 분장이란 점에서…)
하지만 당시 가장 큰 충격을 선사하며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았던 장면은 오늘 이야기할 로빈 윌리엄스의 등장씬 이었다. 터키 황제의 공격으로 자신이 머물었던 도시를 구하기 위해 바론과 샐리는 다리가 빠른 자신의 부하 '버트홀드'(에릭 아이들)를 찾기 위해 달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머리와 신체가 분리된 채 사는 달의 왕 '래이.D.투토'를 만나게 된다.
배경이 우주인 탓에 머리만 공중에 뜬 채로 유영하고 있는 달의 왕은 시종일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식의 데카르트식 철학적 썰을 풀며 자신의 지식을 바론 일행에게 뽐낸다. 썰은 곧 시종일관 정신없게 만드는 로빈 윌리엄스식 수다로 연결되 그만이 선사하는 유쾌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그의 머리와 신체는 합쳐질 수 있지만, 따로 노는 이유는 머리는 지식을 원하지만 신체와 합쳐지면 지식은 온데간데없이 성욕을 비롯한 욕구를 자동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욕구의 조화와 불합치된 존재라는 점에서 이 캐릭터는 작품에서 꽤 상징적이면서 의미심장한 존재로 그려졌다.
달의 왕이 머리만 둥둥 뜬 채로 그려진 장면은 어린 시절 처음 영화를 접했던 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사람의 머리가 신체와 분리된 채 따로 노는 장면을 보게 되니 이 얼마나 잔인한 장면이었겠는가. 게다가 얼굴 전체를 흰색으로 칠한 로빈 윌리엄스의 묘사도 유령 같았으니 그야말로 얼굴만 떠다니는 '몽달귀신'을 보는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종일관 정신없이 떠들고 웃겨주는 로빈 윌리엄스 특유의 낙천적인 연기와 충격 비주얼의 만남은 이 장면을 더욱 잊혀지지 않게 만들었다. 잔인함과 유머의 만남이 한편의 초현실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예술' 그 자체였다.
로빈 윌리엄스의 충격적이었던 '머리 우주 유영 쇼' 외에도 [바론의 대모험]은 여러 인상적인 명장면들을 선보인다. 달 나라 여행 장면과 묘사는 조르주 멜리에스가 활동했던 1900년대 초기 영화에 대한 헌사적 의미를 지닌 시도였으며, 바로크 시대의 예술과 스팀 펑크를 합친듯한 세계관, 아동 어드벤처를 지향했지만 성인 영화에서나 볼법한 비주얼을 시도한 장면, 당시 19세였던 우마 서먼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시키며 등장하는 올누드 씬은 영화사에 남을 '아름다운 누드'로 기록될 정도였다.
▲화제가 된 우마 서먼의 누드 장면
최근 테리 길리엄의 [제로법칙의 비밀]이 개봉하고 로빈 윌리엄스의 별세가 겹치게 되면서 이 작품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로빈 윌리엄스가 [제로법칙의 비밀]에 특별 출연했던 만큼 테리 길리엄과의 사이는 매우 돈독했다. 상상력의 천재와 다재다능한 배우가 만들어낸 우주 유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잔상이자 추억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나 유쾌함을 잊지 않았던 로빈 윌리엄스를 더욱 그립게 만든다.
▲[바론의 대모험]속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
P.S 1: 사실 [바론의 대모험]은 그 당시 엄청난 흥행참패를 기록했던 '저주받은 걸작' 이었다. 총 46,630,000 달러가 투입되었지만 들어온 수익은 8,083,123 달러로 82.7%의 손실을 남긴 셈이다. 인상적인 명장면을 무수히 남긴 작품이지만 그 만큼 엄청난 제작비를 깎아버린 것이었다. 제작사인 콜럼비아는 이 때문에 파산 위기에 처할 뻔했었고, 테리 길리엄의 친구이자 응원군이었던 아논 밀챈 프로듀서는 해고된다. 소수의 매니아만이 이 작품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 당시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P.S 2: 바론 남작과 함께 모험을 떠나며 영화의 어드벤처 분위기를 높여주었던 샐리 역할을 맡은 아역은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의 여주인공을 연기한 미녀 배우 사라 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