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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 리뷰:무조건 권하고 싶은 영화

14.03.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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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2013]
감독:이수진
출연:천우희,정인선,김소영,이영란
 
줄거리
열 일곱, 누구보다 평범한 소녀 한공주.음악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고, 친구가 있지만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다신 웃을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전학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노래는 공주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 학교의 학부형들이
공주를 찾아 학교로 들이닥치는데…
 

*성폭행 사건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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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는 실제 있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두고 있다. 사건에 대한 진실 여부와 이후 경찰의 처리와 가해자 부모들의 행동이 큰 논란이 되었지만, 영화가 바라보려는 초점은 제3자가 아닌 피해자 소녀의 시각이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생존한 소녀는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것일까? 그동안의 실화 사건 소재의 영화들이 '사건'에 초점을 맞춘것과 다르게, [한공주]의 피해자로서의 시각은 과감하면서도 위험하다. 논픽션이 픽션화가 되면서 드라마적 설정 강조로 인해 진실이 왜곡될수 있는 위험이 있는가 하면 자칫 실제 인물에게 '제2의 상처'가 될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공주]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소녀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진행했을까? 
 

*누가 그녀를 두번 죽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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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는 사실, 마음 편하게 감상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영화는 그녀가 서울의 한 학교로 전학을 오고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가는 장면을 비중 있게 그리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회상 장면을 통해 언급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접하게 될 우리는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사전적으로 알고있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그녀를 초반부터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이후 스크린을 통해 비춰지는 그녀의 현실은 냉정하리 만큼 가혹하다. 새로 만난 사람들은 어느 하나 달갑게 환영해 주지 않는다. 그녀가 머물게된 낡은 방은 위압 그 자체이며, 치료를 위해 방문한 산부인과는 그녀를 배려하기 보다는 수치심을 주고 있으며, 신세대들의 소통의 도구인 스마트폰과 인터넷 환경은 그녀가 멸시하고 피해야 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교육,경찰)은 왜곡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린 아이러니,배신과 윤리적 관념을 잃어버린 아이들,그녀를 지켜주지 못하고 흩어진 가족들…
 
[한공주]의 세상은 분명 픽션이지만 이상하리 만큼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 낸다. 말로는 도덕적 관념을 외치며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부조리로 인해 무너진 시스템, 그리고 이중적인 시각을 지닌 인간의 간교함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해져버린 풍경이다. 주인공 '한공주'가 아무리 피해자이다 하더라도 그녀의 진실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러한 비정하고 가혹한 분위기의 세상을 치밀하면서도 차분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살아남았고, 다시 살아가려 한다. 
 

*희망과 비극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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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분위기에도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재미있는 구성과 긍정적인 시각도 함께한다. 낮선 곳, 그리고 따뜻하지 않은 세상에 내몰린 한공주는 자신이 기거하게 된 동네에서 수영장을 찾는다. 큰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철없고 순수한 면을 지닌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픔 속에서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이지 희망을 상징한다. 벼랑 끝에 선 공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사람들과 친해지고 우연히 듣게 된 아카펠라 동아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와 세상 밖으로 더 나아갈수 없는 울타리는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새롭게 알게된 그녀의 친구 은희(정인선)는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려한다. 은희의 등장은 그녀에게 상처가 아닌 희망을 줄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암시하며 희망적인 부분을 빛춘다.
 
그러나 [한공주]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제 막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듯 싶다가 어두웠던 과거의 장면을 플래시백처럼 등장시키고는 한다. 관객들은 결국 좋으나 싫으나 한공주의 처절했던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서 마음속 시린 아픔을 자극하게 된다. 희망과 절망이 함께 교차하고 이어지는 파국적 순간이 등장하기까지 아무도 한공주의 편을 들어주고 아픔을 감싸주는 사람들은 없다. 오로지 혼자 흐느낄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이 당당하게 [한공주] 석자 인것처럼 최악의 순간에도 스스로 자립하고 일어서려는 그녀의 당당함이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주제이다.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버린것 같은 왜곡된 현실이 앞을 가로막지만 스스로 수영을 배워 생존의 길을 만들어 나아갔듯이, 세상의 모든 '한공주'들에게 당당하게 일어설것을 응원하고 있다. 결국, [한공주]는 세상과 주변을 통해 희망의 빛을 찾지 말라는 냉정한 교훈을 주면서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찾아낼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감정이입과 같은 감동을 자극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감독의 대담한 주제의식 덕분에 우리는 영화속의 한공주를 매력적으로 바라볼것이며 그녀의 모든 감정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인상적인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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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연출력과 희망과 비극의 순간을 조화롭게 구성된 이야기를 완성한 이수진 감독의 연출력은 분명 인상적이며, 마틴 스콜세지의 말처럼 앞으로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지극히 현실적인 모든 순간속에 판타지와 현실사이의 교차점에 놓인 인상적인 엔딩 장면은 대담하기까지 하다. 다소 불편한 주제와 분위기가 영화를 지배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진 여러 장면들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한공주가 죽은 친구와 몇번이고 마주치는 순간은 그녀의 심리와 감정의 변화를 잘 표현한 부분이며, 절망속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부분은 침체되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흔든다. 그리고 그리 밝지 않은 부분에서는 슬픔과 분노의 여운을 불러온다. 그녀 혼자 남아있는 어둠이 희망이고 밝은 공간을 두려워 하는 아이러니한 장면도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한공주]는 장면 하나하나가 매순간 중요하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장면의 영화'라 불리어도 무방하다.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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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함과 냉철함을 동시에 지닌 이수진 이라는 젊은 감독의 발견과 함께, 극의 전반을 이끈 주연배우 천우희의 활약이 매우 돋보였다. 그녀는 영화속 한공주 그 자체이자 영화의 전부와도 같았다. 다양한 감정을 불러오는 연기와 10대 여고생 특유의 말투와 생각을 연기하는 장면은 실제 여고생을 착각하게 할 정도다. [써니] [마더] [우아한 거짓말]에서 여고생과 10대 후반 여성을 주로 연기했던 그녀의 경험을 생각해 본다면 [한공주]의 여고생은 그녀의 연기 인생의 '종합'과도 같았다. 천우희는 슬픔과 발랄함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한공주'를 당당하고 매력적으로 연기하면서 한국영화사에 깊은 인상을 남길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감정변화와 함께 여성미를 동시에 지닌 그녀는 향후 충무로를 대표할 차세대 주연 자리를 꿰찰수 있지 않을가 조심히 예상해본다. 이밖에도 폭풍성장으로 유명해진 아역배우 정인선과 김소영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은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왜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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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 만큼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의 심리를 섬세하고 냉철하게 조명한 영화는 드물었을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와 가해자에게 분노만 하고, 피해자의 입장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실아닐까? 경쟁사회에 익숙해져 약자에 대한 조그만 배려마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이기심이 알게모르게 약자를 죽일수 있음을 경고하며 우리모두 그러한 피해자가 될수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한공주]는 앞서 개봉한 [우아한 거짓말] 처럼 한없이 따뜻하거나 힐링적인 분위기와 메시지를 지닌 작품과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자신의 기준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려 한다. 영화속 '한공주'는 약자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한계내에서 당당해지고 강해지려 한다. 약자를 한없이 약한 이미지로 그리기 보다는 그 약함을 매력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우리는 그녀를 통해 비극이 예정되어 있지만, 자신만의 용기로 세상을 이겨낸 매력적인 소녀를 만나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희망을 얻고 현실속의 약자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쩌면, 현재 종교적 의미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노아] 보다도 [한공주]가 오히려 더욱 주목받고 관심을 가져야할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스스로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조그맣게 말하는 그녀를 향해 '아가페'(기독교식 이유없는 사랑)적 사랑으로 포옹하고 보호해 줘야 하는게 종교적인 논란에 열을 올리고 있는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 그 점에서 [한공주]는 모두에게 권하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 되었으면 한다. 
 

*감상포인트
-주인공의 시선을 인내심을 갖고 감상할것
-심각한 주제의식을 찾기 보다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에 주목할 것
 
-반전이나 스릴러식 구성과 진실찾기 게임을 기대했다면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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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오락성:★★★
연기:★★★★☆
연출력:★★★★
 
총점:★★★★
 
 
(사진=무비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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