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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리뷰: 새롭게 쓰여진 어두운 '천지창조'

14.03.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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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2014]
감독: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안소니 홉킨스,레이 윈스턴
 
줄거리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유일한 인물 ‘노아’(러셀 크로우). 그는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거대한 방주를 짓기 시작한다. 방주에 탈 수 있는 이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암수 한 쌍과 노아의 가족들 뿐.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를 조롱하기 시작하
고 가족들간의 의견 대립마저 생겨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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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안 다니는 사람도 잠깐이라도 들어봤을 '노아의 방주' 신화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성경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기대와 우려를 하고 있는 시선이 많았다. 크리스천 영화팬들에게는 익숙한 성경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가졌을 것이고, 일반 영화팬들에게는 예고편을 통해 보였던 엄청난 스케일에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비기독교 관객들은 이 영화가 자칫 성격적인 세계관과 윤리를 주장할 '전도용'(?) 영화가 될가 우려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그러한 기대와 우려를 하고 있다면 이 영화의 감독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전작들을 보고 다시 판단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금은 [더레슬러] [블랙 스완]으로 헐리웃에서 입지를 다진 스타일리스트 감독으로 자리 잡았지만 데뷔작 격인 [파이] [레퀴엠]을 본다면 그 근본부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원주율과 마약이라는 소재를 심오한 철학과 MTV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로 그려내는 방식은 그야말로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첫 상업영화 데뷔작 [천년을 흐르는 사랑]만 보더라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그려내는 사람인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 감독이 서양 문화의 근본이라 할수있는 성경 신화를 건드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논란과 여파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과연, 아로노프스키가 다시 쓴 성경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성경이 아닌 판타지를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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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자 고대 이스라엘 배경을 맨 먼저 인식하고 있었던 관객들은 적지않게 당황할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의상과 배경 그리고 난생 처음 본 짐승이 출현하면서 우리가 알던 고대 신화속 세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 과거라는 단어보다는 SF 영화에서나 볼법한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에 가까웠다. 한 마디로 아로노프스키는 '성경' 이 아닌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가 제작되기에 앞서 아로노프스키는 이 영화의 원작은 성경이 아닌 자신이 직접 완성한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라고 전했다. 이는 작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이 취했던 방식과 같았다. 성경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우선으로 새로운 작
품으로 그려내겠다는 의지였다. 아로노프스키는 이 성경의 세계를 이제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기초가 되다시피한 판타지 세계의 옷을 입히기로 결정했다. 인간들이 채취하는 신비한 지하자원과 성경속 '에덴동산'과 연결된 신비한 뱀 비늘, 이로인해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들인 거인족 '감시자들'은 고대물 보다는 판타지 영화에 등장할 법한 비주얼 이었다. 심지어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간으로 기록된 '므두셀라'는 블리자드 게임과 판타지 영화에 등장하는 전사이자 신비한 마법사의 역할을 하고있다.
 
스토리만 성경을 빌려오고, 비주얼은 SF 판타지로 그려내면서 [노아]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방주 신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려 한다.
 

*다소 어두운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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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로 재설정된 만큼 [노아]는 성경속 세계관을 넘어선 풍부한 이야기로 배경을 넓히게 된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노아]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충실했다.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영화속 배경인 시대상을 조명하며 사건의 시작을 예고하고, 중반부 들어와서 그 시작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식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은 이상하리만큼 어렵게 느껴진다. 대다수는 이 영화를 통해 멸망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원을 받은 노아라는 사람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할거라 예상했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을 차지하고 있는 영상은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들의 죄악을 전자에서 언급한 아로노프스키식 편집 영상이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를 이끌어야 할 노아 가족은 욕망과 갈등 사이에서 방황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감독은 중반부터 배경에서 등장인물들 까지 모든것을 어둡게 그려낸다. 애시당초 예고편을 통해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재난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수도 있다. 재난영화의 특징인 자연의 변화와 사건의 변화를 조명하기보다는 각각의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와 초점에만 맞추다 보니 그 배경적 이야기에는 감흥이 오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대홍수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온다기 보다는 처절하고 잔혹한 묵시록의 일부에 불과하다.

홍수가 일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암울하게 그려냈는데, 홍수가 일어나고 그 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조차 매우 어둡게 조명되기 때문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1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와 CG로 성경속 세계관에 의해 가리워졌던 노아 가족과 인간에 관한 심리를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담한 시도는 종교적 논쟁을 불러올수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가족영화? 사이코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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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려 되었던 부분이 대홍수 장면이 끝나면 그다음은 어떤 장면이 채워질까 하는 거였다. 노아의 홍수를 직접 다루었던 [천지창조]의 경우에는 성경의 내용대로 노아가 방주에 머무르며 육지가 등장하길 기다리는 과정으로 마무리 했다. 하지만,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가 주목한건 대홍수가 아닌 바로 멸망하는 세상 가운데서 '벙커'와 같은 '방주'에 갇혀있는 가족(혹은 생존자)의 심리였다. 과연, 그들은 진정으로 신의 구원을 받은 존재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신의 계시를 받고 그에 순응한 노아와 그의 가족이었지만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성(性)'에 눈을 뜨게 되면서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세상의 죄악을 보고 한탄하는 노아의 자괴감에 의해 '죄'로 규정된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망으로 살아가던 노아는 가부장적이면서도 광적인 신도에 가까운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된다. 그는 방주에 있어야 하지 말아야 할 '그것'(영화를 보며 확인하시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신의 계시라는 이유로 '그것'을 심판하려 한다.
 
대홍수 이후 방주에 갇힌 가족에 주목한 [노아]는 후반부에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이코 스릴러이자 비극적인 가족영화로 변모한다. 다정한 아버지이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불사했던 터프한 가장 노아가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서 가족을 죽이려고 미쳐버린 잭 토렌스(잭 니컬슨)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족 이지만 신과 인간의 관계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와 인본주의적인 욕구에 충실하려는 가족들의 충돌은 '프로이트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적 메시지와 질문을 남기려한다. 결국, 이 영화의 제목이 [노아]인 것은 바로 이러한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 부분은 종교적 논쟁을 불러올수 있는 소지지만, 블록버스터 장르에 과연 이 정도의 시도를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무리수로 인식되기 쉽다. 예상밖의 어두운 설정과 전개에 관객들은 적지 않게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이 의외의 재미로 다가올수 있다. 더이상의 큰 스케일이 나오지 않아 기대감을 낮추었던 관객들도 이러한 가족의 갈등을 심리 스릴러의 기준으로 본다면 꽤 큰 흥미로 다가올수 있다. 국내 관객들 에게는 이같은 설정이 어려울수 있지만, 일부 크리스천 영화팬들에게는 크나큰 논쟁거리가 될것이고, 성경이 철학적 근간이된 서양 관객들에게도 이같은 아로노프스키의 시도를 흥미로운 관점으로 조명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노아]는 개봉전 크리스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우선 시사회를 가졌고 결과는 너무나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 영화를 비판했고 오히려 그것이 이 영화를 이슈화 시킨 요인이 되었다 한다. 그점에서 본다면 제작사는 이 작품을 종교영화적 측면에서 더욱 홍보하려 하지 않을까?
 

*[노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천지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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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본다면 [노아]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이긴 하다. 무엇보다도 아로노프스키가 표현한 SF 영화에 가까운 묵시록적인 '고대 디스토피아' 배경은 시각적인 면에서 독특한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그는 메시지적인 면에서도 무언가 특별한 울림을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국 성경이 아닌 자신이 만든 '천지창조' 세계관을 관객에게 보여주려 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그래픽 노블 원작이 그렇듯이 이를통해 성경이 이야기하지 못한 그 인간들의 심리를 진솔하게 조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아의 가족은 구원받았지만,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구원 받았던 것인가? 노아의 말처럼 신의 계시를 떠받들디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렇지만 그로인해 인간의 수순한 욕망은 철저히 배제당해야 하는가? [노아]의 마지막은 성경속 대홍수의 결말과 비슷하지만, 성경이 전해주는 '구원'과 '희망'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성경속 '노아'와 영화를 통해 등장한 가상의 인물 '일라'(엠마 왓슨)의 대화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지만, 인간의 생각으로 이를 해석하는 것처럼 이는 결국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완성한 '천지창조'는 결국 그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답이 없는 대신 거대한 물음과 논쟁거리만 남긴 것처럼 말이다. [노아]는 오락적으로 즐기고 싶은 작품이지만,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세계관과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될수도 있다. 결국 남은 것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을 얼마나 잘 이해하냐 인데 과연 관객들은 그가 완성한 블록버스터 철학을 얼마나 이해해 줄가? 몫은 여러분 각자에게 맡긴다. 신은 우리에게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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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오락성:★★☆
비주얼:★★★
연기:★★★☆
연출력:★★★
 
총점:★★★
 

(사진=파라마운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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