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Rising

동봉철, 저니맨으로만 기억되기엔 대단했던 WAR [히든플레이어]

18.05.10 15:17

20180509152701_awgeczmk.jpg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 히든플레이어 : 과거에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지금 우리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을 조명해보는 코너입니다. 

 

저니맨(Journeyman). 프로 스포츠에서 자주 팀을 옮기는 선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이적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선수가 팀을 옮긴다는 것은 원 소속팀에서 버려진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 여러 팀을 전전했던 선수들은 비운의 선수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중에는 수려한 외모로 90년대 초반 사자군단의 꽃미남으로 꼽혔던 이 선수의 이름도 자리하고 있다. 삼성의 대표 선수로 자리잡은 구자욱과 비교되기도 했던 그의 선수 생활은 어땠을까. 히든플레이어 일곱번째 주인공은 삼성과 LG 등지에서 뛰었던 동봉철이다. 

 

Emotion Icon 동봉철 통산 성적

[기록=STATIZ.co.kr]

[기록=STATIZ.co.kr]

 

동봉철은 아마시절 높은 평가를 받은 유망주였다. 신일고와 중앙대를 거치는 동안 줄곧 국가대표로 뛰었던 그는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문했다. 입단 첫 시즌이었던 92시즌 동봉철은 팀 2번타자의 중책을 맡아 타율 0.317, 11홈런 52타점, 24도루를 기록하며 강한 2번타자의 면모를 뽐냈다. 

 

비록 같은 해 롯데의 염종석, 빙그레의 정민철과 같은 동기생이 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쳐 신인왕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입단 첫 해부터 뛰어난 타격 능력을 선보인 그는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Emotion Icon '충격적인 데뷔' 동봉철 1992시즌 

[기록=STATIZ.co.kr][기록=STATIZ.co.kr]

 

이 시즌 동봉철의 WAR/144은 무려 6.43으로 이는 48홈런을 기록한 15시즌의 나바로의 WAR과 비슷한 수준임과 동시에 16시즌 테임즈의 WAR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런 성적을 신인 선수가 기록했으니 삼성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동봉철은 92시즌의 활약을 93시즌에도 이어 나간다. 방위병 신분으로 홈 경기에만 출장이 가능했던터라 68경기 출장에 그쳤음에도 동봉철은 타율 0.345를 기록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Emotion Icon 동봉철의 1992시즌 WAR, 어느정도?  

[기록=STATIZ.co.kr] / * 144경기 환산한 WAR[기록=STATIZ.co.kr] / * 144경기 환산한 WAR

  

하지만 94시즌에 접어들자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은 동봉철의 회복을 기다려줄 수 없었고, 96시즌 중 해태로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동봉철은 그 해 해태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지만 끝내 슬럼프 탈출에는 실패했고, 시즌이 끝난 뒤 다시 LG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동봉철은 LG에서 맞은 97시즌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부상으로 시즌을 날린 김재현의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면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과거와 같은 타격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유지현과 중심타선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한 동봉철은 이 해 2번타자의 정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LG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 

 

[사진=LG트윈스 제공] 동봉철 (1998년 팬북)[사진=LG트윈스 제공] 동봉철 (1998년 팬북)

 

그러나 98시즌 김재현이 복귀하면서 그의 자리는 사라졌고, 다시 한화로 팀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 99시즌을 앞두고 쌍방울로 다시 한번 팀을 옮긴 동봉철은 타율 0.274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부활을 외치는 듯 했지만, 그를 오랜 시간 괴롭혀온 관절염, 척추염으로 인해 30살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택하며 KBO 무대를 떠났다.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8시즌이라는 짧지 않은 커리어를 이어나갔던 동봉철.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를 필요로 하는 팀이 많았기에 무려 5개 팀에 몸담으며 프로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삼성시절 지금은 일반화된 '강한 2번타자'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며 매서운 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했고, LG 시절 2번타자의 정석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해 다양한 2번타자의 색깔을 보여줬지만 저니맨이었기에 잊혀지고만 동봉철. 이번 회차를 통해 동봉철의 선수생활이 팬들로부터 재평가받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미디어라이징 | 윤태식 기자



0

Baseball.R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