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rising

80도루는 이제 꿈의 숫자일까.

 올 시즌 많은 팀들이 ‘스피드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성적은 예전만 못한다. 현재 도루왕(6월 30일 기준)은 이대형(kt)으로 71경기에서 25도루를 뛰었다. 그 뒤를 삼성 박해민(73경기 22도루)과 롯데 손아섭(73경기 22도루)이 잇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이 페이스대로 시즌을 마친다면 50도루 안팎의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도루왕이었던 박해민의 60도루에 못 미치는 기록이다.

 

 

 

 역대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은 현역 시절 ‘바람의 아들’이라 불렸던 이종범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이 보유하고 있다. 그는 1994년에 해태(KIA 전신)의 유니폼을 입고 무려 84도루(124경기)를 뛰었다. 당시 리그 타율이 0.257(리그 통산 타율 0.264)로 ‘투고타저’의 양상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종범의 발은 팀에 득점과 승리를 안겨줬다고 볼 수 있다.

 이종범 위원의 기록 이후 80도루는 고사하고, 70도루 이상을 뛴 사람도 없다. 최근 2년 동안 리그가 ‘타고투저’의 양상으로 흘러갔음에도 도루왕들의 발은 과거를 쫓아가지 못했다. 프로야구의 역사가 쌓이면서 여러 기록들의 주인공이 바뀌었지만, 도루 부문에서만큼은 이종범 위원의 84도루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흔히들 '다리에는 슬럼프가 없다'고 말하지만, 타이밍을 잡고, 달리고, 거침없는 슬라이딩을 해야 하는 도루에서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전준호 (NC 주루코치)  “시대가 지날수록 투수들의 기량이 향상되고 있다. 투수들의 퀵모션이 빨라지고 이제는 포수 뿐 아니라 투수들도 도루에 대비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주자들이 뛰기 까다로워졌다. 포수들의 송구 능력도 좋아졌다. 특히나 팀마다 전력 분석 수준도 이전과 다르기 때문에 각 팀에 발이 빠른 주자들에 대한 사소한 움직임과 버릇 하나까지 다 캐치한다. 도루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정수근 (1998~2001년 도루왕) “예전과 비교해 투수들의 견제 능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발 빠른 주자들을 상대로 한 작전도 많아졌다. 주자들이 타이밍잡기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결국 도루는 겁 없이 뛰어야 하는데, 누상에서 많이 죽다 보면 주자들의 경우 도루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스피드가 느려지는 것보다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끼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오재원(두산)  “도루도 타격만큼이나 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못한다. 상대팀 배터리가 내가 나가면 당연히 뛸 것을 생각하고, 타이밍을 뺏기 위해 견제도 하고, 볼배합에도 신경을 쓴다. 그들의 생각 위에 내가 있지 않으면 도루는 성공시키기 어렵다. 순발력을 키울 수 있는 훈련도 꾸준히 해야 한다. 하지만, 잘 뛰던 선수들도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면 스피드도 느려지고, 부상 위험성이 높아져 뛰는 것이 힘들다.”

 

 

 도루의 매력은 상대팀 투수를 견제하면서 득점의 유리함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발이 빠른 선수가 1루에 나갈 경우 상대팀 배터리의 집중력은 분산된다. 1루 주자의 도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타자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볼배합까지 달라진다. 만약 1루 주자가 도루에 성공한다면 주자는 단숨에 득점권에 들어간다. 팀 득점력 해결책을 도루에서 찾으려는 팀들도 있다.

 

 

 팀 입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뛰어주면 좋겠지만, 도루는 아무나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루의 4S라 불리는 스타트(Start)와 스피드(Speed), 슬라이딩(Sliding), 센스(Sense)를 모두 갖춰야만 대도(大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현장에서 ‘도루도 결국엔 타고나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준호 코치“도루를 잘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특히 스피드가 그렇다. 날렵한 발과 뛰는데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도루 성공률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루도 타이밍 싸움이긴 하지만, 잘 뛰어야 살 수 있다.”

 

물론 후천적인 노력으로 진화는 가능하다.

전준호 코치“도루에 대한 열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코치도 어떤 방법으로든 가르쳐줄 수 없는 부분이다. 선수가 뛰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덤벼야만 도루 능력도 향상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도루 능력은 얼마든지 발전 가능하다.”

 

  이종범 위원  “도루에서는 특별한 기술이나 타이밍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음가짐이다. 뛰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으로 벤치 눈치를 본다거나 불안한 마음을 갖고 뛰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생각이 몸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나. 불안한 마음이 결국 다리를 무겁게 만든다. 도루는 과감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나는 도루를 뛰면서 단 한 번도 ‘실패’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내 기록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후배들이 내 기록을 깰 수 있고, 게임수가 144경기로 늘어난 이상 못할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