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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비상하는 독수리의 새로운 날개 '장민재'

16.06.1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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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최악의 암흑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한화는 지금 순위 싸움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연일 연승기록을 갈아치우며 무서운 속도로 다른 팀들과의 승차를 좁혀나가고 있다. 이런 기세라면 꼴찌 탈출은 물론 중위권 도약도 노려볼 만하다. 팀의 상승세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깜짝 스타가 있다. 입단 8년 차에 꽃을 피운 장민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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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민재의 성실함과 야구에 대한 욕심은 김성근 한화 감독도 인정하는 바다. 장민재는 지난 스프링캠프 때 남들은 대하기도 어렵다는 김성근 한화 감독의 방문을 거침없이 두드린 유일한 선수다. 김 감독의 문턱을 넘어선 그는 자신의 투구폼을 점검받았다. 지옥캠프라 불릴 만큼 연일 빡빡한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장민재는 발전을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의식을 갖고 야구를 하라고 말한다. 야구에 대한 욕심을 갖고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라고 한다. 장민재는 (야구)욕심이 많은 선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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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2차 3라운드 전체 22순위로 입단한 그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다양한 변화구를 갖고 있긴 했지만, 컨트롤 부분에서 어려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입단 후 2년 동안 2군 생활을 오래 했던 이유다. 그랬던 그의 야구 인생에도 볕이 들었다. 2011시즌에 류현진(LA 다저스), 양훈(넥센), 안승민, 김혁민에 이어 5선발 역할을 맡았다. 한대화 전 감독의 믿음 아래 15번의 선발 출장 기회를 보장받았지만, 그는 1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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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1승도 그에게는 감격스러웠다. 9전 10기 끝에 올린 값진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를 옆에서 지켜봐 왔던 여동생은 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2군에서 고생한 끝에 찾아온 오빠의 1군 등판 모습에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음 승리까지 장민재는 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장민재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야구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마지막 승리는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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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민재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처절했다. 2011년에 마운드에서 희망을 봤던 그는 부푼 꿈을 안고 맞이한 이듬해 팔꿈치 통증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재활에 매달리며 재기를 노렸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통증에 결국 장민재는 시즌 도중 팔꿈치 수술을 선택했다. 수술 후 군입대를 결정한 그는 대전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있으면서 퇴근을 하고 개인 훈련에 매달리는 열정을 보여줬다. 

 그 사이 이름을 '민제(民濟)'에서 '민재(玟宰)'로 개명했다. 프로 입단 때부터 쓰고 있던 두꺼운 난시용 안경도 벗었다. 시력 교정수술로 안경 없이도 포수의 사인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대 후 체중을 20kg가량 줄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민재   “프로에 입단해서 일이 잘 안 풀리는 느낌이 있었다. 수술도 하고, 군 입대를 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필요한 부분을 바꿔 갔다. 제대 후에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야구 인생을 살고 싶었다. 공익근무를 하면서 재활에만 매달리다 보니 살이 많이 쪘더라. 그동안 식이조절을 독하게 하며 살을 뺐다. 지금은 공 던지기에 가장 좋은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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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잘하겠다는 의욕은 넘쳤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3년이라는 공백기 탓에 실전 감각이 무뎌졌고, 설상가상으로 구위가 예전만 못했다. 1군에서는 단 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18.00을 기록했다. 

장민재  “나름 준비했다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1군에 가도 성적이 좋지 않고, 계속 2군에서 공을 던지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잃었다. 수술과 군복무로 3년 정도 쉬었던 게 컸던 것 같다. 기대를 많이 하고 맞이한 시즌이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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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자신감도, 노력에 대한 실망감도 장민재를 쓰러뜨리진 못했다. 그는 던지고 또 던졌다. 장민재의 성실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은 그에게 ‘장심각’ ‘장성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한 감독은 “장민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연습을 하는 선수다. 태도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다”고 한 바 있다.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된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결승점까지 달려야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장민재의 야구 인생도 그렇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에 결승점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장민재의 마라톤 완주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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