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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인간승리 김동호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고 파"

16.05.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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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정말 하고 싶습니…”

삼성 김동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흘러내리는 눈물과 흐느낌이 그의 말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로 ‘그 마음 변치 말아라. 야구해도 좋다’는 말이 들려왔다. 입단 테스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그에게 기회를 준 사람은 당시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이었던 김성근(현 한화 감독) 감독이었다. 그렇게 김동호는 또 다시 도전의 길에 나섰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고양 원더스에 입단해 1년을 별 다른 소득 없이 보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라는 무언의 압박 속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야구를 놓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그에게는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있었다. 쉼 없이 흘린 땀방울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2014년 5월 그는 마침내 고향 팀 삼성에 입단했고, 올해 비로소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오직 야구만을 생각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김동호. 그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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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에서 방출 된 후 곧바로 입대를 선택했다. 특히나 그곳에서 아이티 파병을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동호  “방출 된 후에 곧바로 영장이 나왔다. 20대 한창때에 야구 선수에게 2년이라는 공백은 크기만 하다. 더욱이 현역으로 가게 되면 야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미루지 말고 군대에 가서 세 가지만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가라고 하더라. 야구를 할 수 있는 여건과 영어 공부할 수 있는 여건, 사람과의 만남의 복을 달라고 말이다. 실제로 군대에 가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영어 공부는 내 의지가 부족했다.(웃음) 아이티 파병의 경우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것에서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가기 전에 중대장이 야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실제로 아이티에 가서 마운드를 만들고, 그물망을 쳐놓고 꾸준히 연습을 했다. 아이티에 가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내가 누리고 사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인생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 ‘야구로 성공하겠다’ 목표는 세웠지만, 거듭된 실패에 지치기도 했을 것 같다. 

김동호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확실히 있다. 고양 원더스에 들어갔을 때 나이가 29세였다. 당시 주위 친구들은 차도 끌고 다니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데, ‘나는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압박감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더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더라도 더 부딪쳐보고 싶었다. 포기라는 단어는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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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무 후 고양 원더스에 입단한 것이 김동호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김동호  “사실 처음에 고양 입단테스트를 봤을 때에는 탈락했다. 당시 테스트 통과 못한 선수들이 마지막에 김성근 감독님한테 인사를 하고 가는 자리였는데, 그때 감독님께 ‘내가 부족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감독님이 ‘너는 폼이 딱딱하다’고 하더라. ‘돈을 안 받아도 되니까 여기서 배팅볼 투수라도 시켜 달라‘고 했지만, 감독님은 거절하셨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도 멀고 서럽게만 느껴지는지. 다음날 집 근처 산에 올라가서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감독님이 전화를 받자마자 ’야구를 하고 싶습니‘까지만 말하고 끝을 맺지 못했다. 그냥 엉엉 울었다. 그러더니 감독님이 ’그 마음 변치 말아라. 구단에서 연락이 갈 것이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고양에 입단하게 됐다.”



- 고양 원더스는 김동호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동호  “기회를 준 팀이다. 고양에 있으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도 많았지만, 또 고양이 없었다면 프로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잊지 못할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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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5월에 삼성의 지명을 받고 프로에 다시금 발을 들였다. 고향 팀이기에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김동호  “기뻤다. 가장 좋은 것은 대학교 졸업 하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는데, 대구에 있으면서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훨씬 안정감도 있고, 마음도 편안하다. 어머니가 잘 챙겨주셔서 밥도 잘 먹고 다닌다. 또 삼성 류중일 감독님이나 코치님들, 동료들이 잘 대해주고 도와줘서 이 팀에 온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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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삼성에 입단한 후에 곧바로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방출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을 것 같다. 

김동호  “당연하다. 당시 삼성에 육성선수 신분으로 왔기 때문에 한화 때와 마찬가지로 뭔가를 보여줘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한화 실패 사례에서 배웠듯이 급하게 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름대로 페이스를 잘 조절한다고 생각했는데, 팔꿈치와 어깨에 통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보여준 것도 없이 14년과 15년이 흘렀다. 사실 방출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성적도 못 냈고, 나이도 많고 여러 가지로 팀에서 나를 데리고 있을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구단에서 기다려줬다. 너무나 감사했다.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올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야구로 보답하는 것뿐이다.”



- 본인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강점은 무엇인가.

김동호  “주위에서 기술적으로 투심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사실 지금 던지는 투심이나 구종 모두 예전부터 던지던 것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강점은 마운드 위에서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를 많이 해보니 스스로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종교가 있다는 것도 내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결국 야구는 멘탈 스포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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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김동호  “군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봤고, 야구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겪었다.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이렇게 해냈다. 누구나 살면서 실패하고, 좌절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꿈을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보고 다들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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