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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정현욱, '국민노예'에서 '국민희망'으로

16.04.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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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입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정현욱(LG)은 말문이 막혔다. 세상이 잠시 정지된 듯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후 그가 꺼낸 말은 “몇 기입니까. 수술하면 살 수 있겠죠”였다. 정현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1996년 삼성에 입단해 1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걸친 정현욱은 2008년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성공’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던졌다. 그 덕분에 팬들에게 ‘노예’라는 별칭을 얻었고,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연이은 호투를 선보이면서 ‘국민노예’로 불렸다. 

2012시즌 후 FA(프리에이전트) 신분으로 LG로 이적한 그는 필승조로 활약하며 팀의 구심점 노릇을 했다. 정현욱은 마운드 뿐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도 성실한 모습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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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2014년 12월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면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사람들에게 위암 투병 사실을 알리지 말라”달라는 정현욱의 간곡한 부탁에 LG관계자들은 입을 닫았다.

수술과 재활을 거쳐 지난해 2군에 복귀한 그는 20kg이나 줄어든 체중과 예전 같지 않은 힘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 야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스스로 작아지기도 했다.  

결국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정현욱은 지난달 26일 시범경기 잠실 두산전서 병마와의 싸움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2014년 7월 8일 잠실 두산전 이후 무려 627일 만에 1군 무대에 선 것이다. 그가 이날 던진 공은 단 7개에 불과했지만, 두 타자를 상대로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정현욱의 투구를 지켜본 많은 이들의 가슴이 뜨거워졌던 이유는 그가 던진 공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봄꽃이 만개했던 지난 8일 이천 LG 챔피언스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건강한 모습으로 1군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마저 반갑게 느껴졌다. ‘정현욱, 국민노예에서 국민희망으로’는 2편으로 나눠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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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 판정은 언제 받았나. 

정현욱  “원래 위가 좋지 않아서 1년에 두 번씩은 정기검진을 받는다. 2014년에 개인적으로 야구도 잘 안되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아서 미뤘다. ‘야구도 못하는데 이런 것 챙겨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시즌 후 속이 좋지 않아서 동네 병원에서 내시경을 받았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 구단에 얘기하고 트레이너와 함께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때 위암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암이라고 얘기하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 마치 드라마 한 장면처럼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처음 꺼낸 얘기가 ‘몇 기예요. 수술하면 살 수 있겠죠’였다. 나도 겁이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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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만큼이나 가족들도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아팠던 선수들 모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얘기하더라.  

정현욱  “와이프가 처음에 듣고 걱정을 많이 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와이프와 부모님께 아이들이 알지 못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이가 둘인데, 괜히 어린 나이에 듣고 상처받을까 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수술하고 항암치료 다니는 동안 와이프가 고생을 많이 했다. 평생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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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위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정현욱  “몇 년 동안을 팀에서 필승조로 활약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늘 긴박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가야 했고, 행여 나 때문에 경기가 지면 동료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때문에 삼성시절부터 위장약을 달고 살았다. 성격이 무던한 (봉)중근이가 마무리투수를 하면서 스트레스 받은 것 보면 결국 이것도 직업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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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정현욱  “치료를 받으면서 그런 생각은 없었지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는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고 150km까지 던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공을 던져보면 그렇지 않더라. 바뀐 현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지난해까지는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있어서 체력 훈련 위주로 했지만, 마지막 항암치료 후 의사에게 ‘전력으로 운동해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모든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어렸을 때 야구를 배우면서 ‘구속보다는 결국 내 구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 그 얘기가 실감 나는 것 같다. 예전처럼 ‘더 빠르게, 강하게’를 욕심내기보다 ‘더 정교하게, 예리하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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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범경기에서 깜짝 등판했다. 그날 경기 후 ‘국민노예’에서 ‘국민희망’으로 애칭이 바뀌었는데, 기분이 어땠나.

정현욱  “사실 예정된 등판이 아니었다. 하루 전날 통보를 받았고 다음 날 가서 바로 경기에 투입된 것이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깔끔하게 경기를 마치고 내려올 수 있어서 기뻤다. ‘스트라이크만 던지고 내려오자’라는 생각으로 던졌다. 근데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서 공을 잡고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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