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계층 아이들의 사회 소통 창구로 힘쓰고 있는 레인보우 희망재단 이사장 박정태는 “빚을 갚는 중”이라고 했다. 현역 시절 그라운드를 누비며 팬들에게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수술과 재활로 힘든 시기를 보냈을 때도 현역 마지막 설 자리를 잃어갈 때도 박정태라는 이름을 불러준 팬들에게 늘 고맙게 생각한다. 야구로 받은 사랑은 야구로 갚아드리는 방법뿐”이라고 전했다.
5번의 수술과 재활을 이겨내고 그라운드로 돌아와 31경기 연속 안타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던 박정태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는 지난 2004년 10월 "체력적인 한계를 느껴 은퇴를 결심했으며 92년 우승 이후 한 번 더 우승하지 못하고 팀 성적이 계속 안 좋았던 것이 아쉽다"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떠나는 박정태를 바라보며 많은 팬들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은퇴 후 캐나다 연수를 거쳐 지도자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그는 2012시즌 후 ‘세상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또다시 그라운드를 떠났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느껴지는 부족함과 다양한 인생 경험의 목마름에서 온 선택이었다.
그는 현재 레인보우 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사회 공헌활동에 나서고 있다. 재단의 대표 사업인 '레인보우카운트 야구단'은 8개 분야의 소외가정 출신 아이들로 구성됐다. 다문화가정(28개 팀), 저소득층(1개 팀), 장애인(1개 팀), 탈북자(1개 팀) 자녀와 소년소녀가장(1개 팀), 아동보호시설(1개 팀), 비행청소년(1개 팀), 폭력피해 청소년(1개 팀) 등 총 35개 팀이 소속돼 있다.
재단 설립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캐나다 연수 시절 인종차별로 소외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박정태는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환경 속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은 아이들이 미래를 향해 크게 비상할 수 있도록 야구단운영, 문화사업, 사회봉사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바쁜 시간들의 연속이지만, 여전히 박정태의 가슴 한켠에는 롯데 유니폼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세상에 나와 있으면서 다른 팀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롯데가 없어지지 않은 한 다른 팀에 간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롯데 유니폼을 입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악바리’ 박정태의 몸에는 여전히 롯데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
‘달인을 만나다-박정태 편’ 그 마지막 이야기는 ‘박정태, 야구쟁이로서의 삶’이다.
- 누구나 그렇지만, 선수로서의 마지막은 쓸쓸하다. 개인적으로 영구결번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박정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뒤에 있는 후배들도 생각해야 하고, 제2의 인생도 준비해야했다. 마지막 은퇴할 때 좋은 모습을 못 보여 드려서 많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늘 가슴 속에 빚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영구결번과 관련된 것도 내 부족의 문제다. 아직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갚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2004년 10월 5일에 유지현(현 LG 코치)의 은퇴식이 생각난다. 당시 다른 팀 후배였지만, 은퇴식 공식행사 도중 꽃다발을 안기며 눈물을 흘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당시 유지현은 은퇴식 인사말을 전하며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의 영웅이십니다. 그 분은 롯데 자이언츠의 박정태 선수입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박정태 “그날 지현한테 평생 갚지 못할 빚이 생겼다. 사실 자신의 은퇴식에서 다른 팀 선배의 이름을 부르며 꽃다발을 전달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날 이후로 유지현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살면서 갚을 날이 온다면 무엇이든 해주겠노라 다짐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좋은 후배고, 좋은 사람이다. 내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가졌다.”
- 1992년 롯데 마지막 우승 멤버다. 최근에는 롯데가 내홍을 겪으며 잡음이 많았다. 선배의 입장에서 밖에서 보기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정태 “팀도 개인도 리듬이라는 것이 있다. 10개 팀이 있다면 (순위가)낮으면 낮을수록 준비를 탄탄하게 할 수 있다. 나는 롯데가 올라갈 수 있는 준비의 발판을 잘 마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원우 감독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고 결단력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롯데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다. 밖에서 지켜보는 선배 입장에서 롯데가 늘 강하고 밝은 팀이었으면 한다.”
- 현장 복귀 시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팀에서 러브콜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정태 “캐나다 연수를 마치고 롯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공부가 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지도자로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며 공부를 하는 중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 환경이 혹독해지면 혹독해질수록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현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 감사하게도 다른 팀에서 영입의사를 밝히기도 하지만, 롯데가 없어지지 않는 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박정태는 롯데다’라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그라운드를 다시 밟는다면 롯데였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때까지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 박정태에게 롯데란 어떤 의미인가.
박정태 “내 전부다. 롯데와 팬이 없었다면 박정태도 없다. 롯데 출신이기에 여전히 부산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그리워 해주신다. 받은 사랑만큼 해드린 게 없어서 죄송할 따름이다.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것을 기억하며 행여 누가 될까 늘 행동도 조심해지는 것 같다. 롯데라는 팀에서 뛰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영광이다.”
- 현재 운영하고 있는 레인보우 희망재단의 창단 이유가 궁금하다.
박정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힘든 생활을 했다. 가난과 싸워봤고, 세상 원망도 하면서 방황하기도 했다. 그때 나를 붙들어줬던 사람이 어머니였고, ‘성공’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했던 건 야구였다. 은퇴 후 연수를 위해 캐나다에 갔을 때 다른 인종으로 무시 받는 기분을 받았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다문화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고충이 보이더라. 내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스포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길 바랬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레인보우 희망재단이다. 그동안 내가 박정태라는 이름으로 그라운드에서 받았던 사랑을 이런 방법으로 갚아나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 재단을 운영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박정태 “재단이 만들어지면서 소속 팀이 늘어났다.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재정적으로나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코치 한 명이 들어오면 아이들 3~4명을 더 받을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사회의 관심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현재 레인보우 희망재단 홈페이지(www.rbhf.co.kr)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받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박정태 “재단의 최종 목표는 대안학교 설립이다. 대안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아픔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더 많은 아이들이 웃고 뛸 수 있도록 언제나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