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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저니맨' 최익성의 청춘을 향한 외침

야옹다옹 ㅣ 16.04.1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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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역대 최다 트레이드로 6개 팀의 유니폼을 입었던 최익성.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저니맨’이라는 수식어. 처음부터 그가 ‘저니맨의 인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최익성은 “사람들이 나를 저니맨이라 불렀다. 나는 그게 싫었다. 저니맨이라는 말이 꼭 ‘너는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면서 “야구를 그만두고 책을 쓰기 위해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저니맨이라는 단어가 마음으로 와 닿아지더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살았다는 훈장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저니맨이라는 경험이 그에게는 좋은 교과서가 됐고, 여러 후배들을 교육시키면서 노하우도 쌓았다. 학교 설립 4년 만에 프로출신 선수 4명을 재입단 시키고, 학생야구선수 20명을 배출해내는 쾌거를 이뤘다. 최익성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야구 멘탈 트레이너라는 새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최익성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실패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그는 세상의 시련 앞에서 작아지지 않았으며, 부족한 것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도전했고, 노력했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다. 

‘달인을 만나다-최익성 편’의 마지막 이야기는 ‘저니맨 최익성의 청춘을 향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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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에 삼성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되면서 '떠돌이 인생'이 시작됐다.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6개 팀을 거쳤는데.

최익성   “한화로 트레이드된 것이 기나긴 여행의 시작이 된 셈이다. 거의 1년에 한 번씩 팀을 옮겨 다녔는데, 이사를 하고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는 일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 팀에 대한 서먹함은 물론 도시에 대한 어색함, 외톨이가 된 기분을 늘 느껴야 했다. 6개월 정도가 지나고 겨우 적응을 할 만하면 또 다른 팀으로 가야 했다. 여러 팀을 옮겨 다닌 시절을 통으로 하면 10년이지만, 나는 정말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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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니맨으로 살기에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최익성   “적응력은 둘째 치고 야구를 하러 팀을 옮겨갔는데, 시합에 나가지 못하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때가 가장 속상하다. 2군에 있을 때는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저녁 9시 정도 된다. 그때부터 방에 혼자 있는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놀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몸이 망가지고 다른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술도 마음껏 못 마셨다. 야구는 더더욱 보기 싫더라. 정말 혼자 멍하니 벽만 보고 앉아 있으면 정신병자가 되는 기분이다. 왜 경주마가 달리지 못하면 벽에 머리를 박고 죽는지 그 심정을 알겠더라. 나는 늘 설 땅이 없는 기분이었고, 들러리나 보험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야구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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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를 왜 했을까’ 후회도 했을 것 같은데.  

최익성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야구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직접 선택한 일이다. 내 선택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저니맨으로 살면서 힘든 일이 많았지만, 반대로 얻은 것도 많다. 야구를 그만두고 세상에 나와서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을 지금에야 이해하겠더라. 나는 ‘과거를 개척하는 자가 미래를 만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지금 내가 야구사관학교를 통해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겨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결국, 경험이 인생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뿌리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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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사업과 연예계 진출, 출판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최익성   “나도 내가 다재다능한지 몰랐다. 야구를 할 때는 야구만 했으니 알 턱이 없었다. 연기도 그렇고 사업도 좋은 기회와 연이 닿으면서 할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경험이 됐다. 책의 경우 애초에 출판 일까지 함께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출판업계의 시스템과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의 방향성이 맞지 않아 직접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당시 제대로 된 집도 한 칸 없고, 생활도 넉넉한 편이 아니라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틈틈이 연습장에 직접 손으로 써서 작업을 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니맨’이라는 말이 ‘실패했다’는 얘기로 들려서 달갑지 않았는데, 책을 쓰기 위해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열심히 살았다’는 훈장 같은 느낌이더라. 저니맨이라는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사실 책을 쓴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네가 이승엽이나 양준혁처럼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무슨 책을 쓰냐’고 비아냥거렸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성공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기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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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저니맨 야구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창설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최익성   “2012년에 야구육성사관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야구는 전문적으로 케어해주는 시스템이 없냐’는 물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내가 겪었던 것들을 내가 못했던 것들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고, 정말 필요한 것들을 퍼주고 싶은 마음이다. 야구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 사관학교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얘기다. 멘탈 트레이너일도 비슷한 목표로 접근하고 있다. 멘탈 트레이너는 선수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는 존재다. 선수가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가고 멘탈을 잡을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고민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나처럼 야구판에서 힘들게 산 인생도 드물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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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성의 야구 인생만큼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인생도 도전의 연속이다.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준다면.  

최익성   “어떤 일을 하던 자기 자신을 먼저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체나 집단 속에서 나를 찾으려 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선택과 책임 속에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과 책임감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정신력도 강해지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무리 속에 휩쓸려 나를 잃으면 말 그대로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처음부터 높이 뛰지 않아도 된다. 눈앞에 보이는 한 계단을 온전히 자기 힘으로 올라서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서 현재의 내가 되고,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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