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류제국이 물었다. “좋은 주장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기자가 잠시 고민에 빠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내놓았다. “고민할 필요 없어요. 그냥 그 팀이 잘 돌아가고 있으면 좋은 주장이 되는 것이고, 잡음이 많고 선수단 분위기가 안 좋으면 별로인 주장이 되는 겁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 같은 질문에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류제국의 말에 이미 고개가 끄덕여지고 있었다.
류제국은 지난 1월 LG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물론 구단 직원까지 참가한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2년 임기의 주장에 선임됐다. 야수가 주장을 맡는 게 일반적이지만, LG는 이례적으로 선발 투수인 류제국이 선택된 것이다.
LG의 경우 다른 팀들과 비교해 주장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 예전부터 '모래알'이라 불리는 팀 문화를 어떻게 바꿔놓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 또 올해는 LG가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걸고 팀 체질개선에 나선 실험적인 해이기도 하다. 주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즌을 준비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가중됐지만, 류제국은 한층 여유로워졌다. “달라진 LG를 기대해도 좋다”는 그의 말 속에 담긴 LG의 변화가 궁금했다.
류제국 “주장직을 맡고 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소통이다. 선수단의 요구 사항이나 행여 팀 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담아두지 말고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스프링캠프에서 감독님 방을 여러 번 찾아갔다. 직접 대면하고 얘기를 해야 오가는 말 속에서 오해가 생기지 않을 것 아닌가. 다행히 감독님께서도 선수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듣길 원하셔서 한결 수월하게 방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시려고 한다. 만약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니까 선수들도 납득하게 됐다. 주장이라고 해서 감독님 방을 계속 왔다 갔다 하니 코칭스태프 쪽에서 불편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총대를 메는 것은 나고 욕도 내가 먹으면 그만이다.”
류제국 “지난 시즌에는 팀 성적이 안 좋아서 분위기도 많이 다운됐다. 야구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한다. 졌다고 처져 있으면 오히려 그 분위기가 다음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더라도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선수들에게 팀 분위기를 흐리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선배라고 하더라도 팀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것은 못 참겠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분위기만큼은 지지 않았으면 한다. 감독님도 그런 점에서 굉장히 노력하고 계신다. 확실히 분위기가 밝아지고, 팀에 활기가 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달라진 LG를 기대해도 좋다.”
류제국 “주장이라고 해서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성격상 후배들에게 워낙 편안하게 대하는 스타일이라 무게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럴 때마다 (이)동현이 형이 투입된다. 애들이 동현이 형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싫은 소리가 잘 먹힌다. 가끔 선을 넘는 후배들이 있으면 조용히 동현이 형을 데려와서 ‘다시 해보라’고 말한다. 그럼 후배들이 스스로 자신이 잘못 했다는 사실을 깨닫더라. 동현이 형이 카리스마를 담당하면서 아빠 같은 역할을 해준다. (우)규민이는 어린 선수들과 친분이 두텁고 자상한 스타일이라 후배들을 관리하고 있고, (봉)중근이 형은 고참들을 담당해주고 있다. 혼자서 하다 보면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을 텐데 다른 선수들이 잘 도와주고 있어서 한결 수월하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류제국 “정말 지난해는 돌이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 ‘승수 하나 쌓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얻은 것이 있다면 정신적인 부분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시련이 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못했던 것까지 올해는 승리에 욕심을 내고 싶다. 그동안 6회 이후에도 욕심이 생겨서 등판을 자처했다가 피를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욕심을 버리려고 한다.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만 채우고 뒤는 불펜 투수들에게 맡기겠다. ‘6회만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전력투구하겠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