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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리뷰] 아스날을 닮은 러블리즈

17.11.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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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는 축구팀으로 치면 아스날을 연상시키는 그룹이다.

아스날은 아르센 뱅거라는 걸출한 감독의 장기 집권 체제 하에서 아름다운 공격축구를 추구하며 큰 성공과 인기를 끈 클럽으로, 이들의 뚜렷한 축구철학과 이를 통해 만들어낸 뷰티풀 게임들은 수많은 골수팬들을 만들어냈다.

러블리즈 역시 윤상 - 정확히는 원피스 - 이라는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 마치 뱅거와 아스날이 그랬던 것처럼 - 자신들만의 뚜렷한 음악색을 만들어온 그룹으로, 여타 걸그룹들과는 확연히 다른 러블리즈의 음악들은 많은 골수팬들을 만들어냈다. 

다만 문제는 러블리즈와 윤상의 동행이 과거 영광의 시기의 아스날과 뱅거가 아닌 최근 흔들리는 아스날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아스널은 2003-04 시즌 EPL출범 이후 유일하게 무패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팀이다. 그로부터 수년간은 리그와 챔스에서 우승을 다툴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전통의 명문이자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재벌 구단주를 등에 업고 신흥 강호로 떠오른 맨체스터 시티, 첼시, 심지어 한수 아래로 여기던 토트넘에게까지 밀려 4/16(리그 4위, 챔스 16강)의 과학자 집단이 되어버렸다.

러블리즈는 바로 이 2010년대 이후 아스널과 닮아있다. 분명 남부럽지 않은 팬덤과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좋은 음악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컴백전에는 높은 기대감을 형성하지만 정작 성적은 항상 우승(1위)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 물론 SBS MTV '더쇼'에서 '지금, 우리'로 1위를 하긴 했다. 하지만 '더쇼'의 경우 '엠카운트다운'이나 지상파 음악방송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편이다. 그런데 아스널도 2014과 2015년, 리그 우승에 비해 저평가되는 FA컵에서 우승을 했다. 이런점 마저도 둘은 닮았다. -    

게다가 후발주자인 트와이스, 여자친구, 블랙핑크 등에게 뒤쳐진 것은 물론,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아이오아이 출신 걸그룹들(우주소녀, 프리스틴, 다이아 등등)에게까지 한데 묶이거나 비교당하고 있는 게 지금 러블리즈의 현실이다.    

알다시피 명문이라고 불리는 축구 클럽들이 성적이 신통치 않을때 자주 꺼내드는 카드가 바로 감독 교체이다. 아스날의 경우 '뱅거가 곧 아스날'이라고 할정도로 뱅거가 클럽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에 큰 특이한 관계이기에 수년간 우승과 거리가 먼 성적을 거둬왔음에도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굳건해 보이던 아스날에서 뱅거 감독의 입지도 성적부진이 장기화되자 결국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난 시즌부터 아스날의 홈구장인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뱅거의 퇴진을 바라는 피켓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우여곡절끝에 올해 2년 재계약을 맺은 벵거 감독이지만 이 기간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20년 넘게 몸담았던 아스날과의 결별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러블리즈는 아스날보다 한발 먼저 감독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14일 세 번째 미니앨범 'Fall in Lovelyz'(폴 인 러블리즈)를 발매한 러블리즈는 '영혼의 동반자'같았던 원피스가 아닌 원택(1 Take), 탁(TAK)과 호흡을 맞춘 '종소리'를 타이틀곡으로 내놓았다. 러블리즈가 원피스가 아닌 작곡가의 곡을 타이틀곡으로 삼은 건 흑태가 작곡한 '그대에게' 이후 두 번째이다.

감독이 바뀌었다고 해도 극적으로 클럽의 색이 바뀌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전술을 바탕으로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 식으로 점차 새로운 콘셉트를 잡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러블리즈의 '종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작곡가가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종소리'는 일렉트로닉 팝을 기반으로 아련하고 소녀스러운 느낌의 러블리즈 기존 콘셉트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심지어 인트로 부분에는 'Destiny (나의 지구)'의 인트로를 살짝 집어 넣는 센스를 발휘해 원피스+러블리즈의 음악의 명맥을 잇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먼저 '종소리'는 마이너 화성이 사라졌다. 

윤상은 과거부터 마이너 화성을 즐겨쓰는 작곡가로 유명했으며, 이는 러블리즈의 노래에도 유효했다. 또 이런 특징 덕분에 러블리즈는 독특한 음악성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상대적으로 음악들이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종소리'는 러블리즈가 지금까지 발표한 곡 중 - '그대에게'를 제외하고 - 가장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템포로 '신나는 러블리즈'를 보여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종소리'는 러블리즈의 노래 중 처음으로 랩을 시도한 타이틀곡 곡이기도 하다. 

러블리즈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멤버 전원이 보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선 러블리즈의 곡들은 대부분 촘촘한 파트 분배로 멤버들의 보컬실력을 드러내는데 힘을 쏟았지만, '종소리'는 유지애와 서지수에게 랩퍼라는 역할을 부여해 새로운 매력 발견의 가능성에 힘쓰고 있다. 

가사적으로도 '종소리'는 러블리즈의 역대 타이틀곡 중 가장 대놓고 계절감을 드러낸 곡이기도 하다.

그동안 러블리즈의 노래들은 3부작 시리즈 - 라고 하지만 사실상 6부작 - 에 맞춰 하나의 긴 이야기를 이어왔고, 당연히 이는 계절과는 상관없는 - 누차 말하지만 '그대에게'는 제외다. 그리고 '그대에게'도 가사 자체는 여름송이 아니다 - 내용들이었다. 

반면 '종소리'는 제목부터 크리스마스와 겨울 시즌을 연상케 하고 있다. 또 실제 음악과 가사를 듣고 있으면 누가 들어도 '종소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고백을 받고 싶은 소녀의 마음으로 해석하게되는 겨울 시즌송이다. 

시기나 타이밍을 재지 않고 마이웨이로 자신들의 음악과 노래를 이어가던 러블리즈가 시즌송을 내놓은 모습은 마치 언제나 자신의 축구로 일관하던 아스날이 최근 스리백 등을 시도하며 상대방 맞춤 전략을 들고 나온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해 흥미롭다. 

종합하면 '종소리'는 러블리즈가 자신들에 대한 큰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시작하는 세부적인 묘사와 같은 음악이다. 이렇게 최종 완성된 그림이 과연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경쟁자들이 워낙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고 우승하지 못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스날이 조롱의 대상이 되긴했지만, 실제 아스날은 단 한번도 잉글랜드 축구 최상위 리그에서 강등당한 적이 없고 여전히 '빅6'에 꼽히는 강팀이다. 

러블리즈 역시 하필이면 경쟁 걸그룹들이 역대급 성적을 거두고 있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됐을 뿐이지 실제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인기 걸그룹이다. 

아스날이 우승을 하지 못해도 팬들은 그들이 펼치는 '뷰티풀 사커'에 환호하고 쾌감을 얻는 것처럼, 러블리즈 역시 단순히 성적이 아니라 그들이 그려가는 아름다운 음악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최현정 기자 gagnrad@happy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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