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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헐리웃을 발칵 뒤집은 세기의 스캔들

13.07.18 12:02

멋지고 아름다운 헐리웃 스타들은 늘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걸러 파트너가 바뀌는 그들의 스캔들은 이제 헐리웃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인 미국 문화에서도 용서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애인 있는 사람을 가로채는 것'인데요. 이러한 비도덕적인 일이 헐리웃에서는 꽤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놀랍게도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세기의 스타들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과연 '조강지처' 버리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 스타들에는 누가 있을까요? 무비라이징이 알아보았습니다!
 

1. 불꽃처럼 사랑하다, 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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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극적인 생애는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전 세계가 환호하는 스타였지만 그 이면에는 아버지에 대한 부재와 외로움, 성폭행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었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릴린먼로는 유독 사랑에 목말라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배우, 가수, 정치인들과 늘 염문설에 휩싸였습니다.
 
1960년작 [사랑을 합시다] 촬영장에서 마릴린 먼로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 이브 몽땅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당시 마릴린 먼로는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브 몽땅 역시 프랑스  출신 여배우 시몬 시뇨레와 혼인 관계에 있었죠.  두 사람의 염문설은 헐리웃을 넘어 유럽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이브 몽땅은 후에 자서전 [세기의 연인, 이브 몽땅의 고백]에서 마릴린 먼로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습니다.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이브 몽땅 이외에도 존.F 케네디 대통령,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아인슈타인 등 당대 유명인과 심심치 않게 염문설을 뿌립니다. 서른 여섯의 나이로 너무나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마릴린 먼로. 죽음까지도 미스테리했던 그녀의 생은 찬란하게 빛나는 불꽃 같았습니다.
 
 
2.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 엘리자베스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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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이클 토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디 피셔, 데비 레이놀즈)
 
7번의 결혼과 8번의 이혼. 세기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삶에는 수많은 염문설들이 존재합니다.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한 그녀를 남자들은 가만히 두지 않죠. 두 번째 남편인 마이클 윌딩과 이혼한지 이틀만에 결혼한 마이클 토드와의 결혼생활은 사치스러움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생활은 1년만에 마이클이 비행기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며 끝나고 맙니다.
 
슬픔에 젖어있었던 그녀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은 팝가수 에디 피셔였습니다. 그녀의 네번째 남편이 된 에디 피셔는 전 남편 마이클 토드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게다가 에디 피셔는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친구인 데비 레이놀즈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디 피셔 역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반해 조강지처를 버리고 말죠. 그들의 결혼식은 세간의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녀는 "그럼 혼자 자란 말이냐?"며 쿨하게 응수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강지처를 버린데 대한 벌이었을까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에디 피셔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11년, 영원한 별이 되어버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죽기 전 "다섯번째 남편이었던 리처드 버튼이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섯번의 결혼을 했던 리처드 버튼 역시 죽기 직전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쯤되면 세기의 사랑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3. 록 음악의 대부가 사랑에 빠지면, 브루스 스프링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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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스터 USA'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 노동계를 대표하는 락 가수입니다. 미국 대중들은 그를 'BOSS'라고 칭할 정도라고 하니, 그가 음악계와 사회활동에서 갖는 존재감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82년에 발표한 '네브레스카'의 가사는 그가 미국을 어떤 시각으로 인식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아 직장을 구하러 다니던 남자는 결국 취업에 실패하고 술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술에 잔뜩 취해 다니던 남자는 실수로 야간 근무자를 쏘았고 그 순간 살인자가 되고 맙니다. 총을 휘두루며 미치광이처럼 날뛰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된 남자에게 법원은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이밖에도 그의 음악에는 당대 미국의 시대상황을 드러내는 황량함과 암울함, 긴박함등의 분위기가 흐릅니다. 80년대, 당시의 사회와 정치를 음악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록 가수에게 미국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자였습니다. 그는 85년 5월, 미녀 수퍼모델 줄리안 필립스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얼마 안가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줄리안 필립스는 '잘 나가는' 모델이었습니다. 하루 2천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모델과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95억원짜리 크라이슬러 광고를 거절한 남자의 조합은 누가 보아도 잘 맞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결혼생활에 힘들어하던 그의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그의 밴드의 백 싱어 '패티 스칼파'였습니다. 브루스는 무대 뒤에 있는 패티에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I Can't Help Falling in Love'(이 사랑을 멈출 수 없어요)를 불러주며 사랑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둘의 열애 사실은 88년 10월, 피플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대서특필됩니다.
 
결국 89년 줄리안 필립스와 이혼한 브루스는 91년 패티 스칼파와 결혼에 골인합니다. 결혼생활 23년차인 지금, 슬하에 세 자녀를 둔 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패티 스칼파. 이 정도면 해피앤딩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4. 헐리웃 최악의 스캔들, 순이 프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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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최악의 스캔들이라 불리는 우디 앨런, 순이 프레빈, 미아 패로의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1970년,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배우 미아 패로와 저명한 음악가 안드레 프레빈의 결혼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첫 남편과의 결혼 실패 후 울적한 미아 패로의 마음을 달래준 사람은 16살 연상의 음악가 안드레 프레빈이었습니다. 원래 좋은 친구였던 그들은 미아의 이혼 이후 부쩍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당시 안드레 프레빈이 '도리 프레빈'과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도리와 안드레는 이혼했고 도리 프레빈은 후에 '젊은 여자를 조심하세요'라는 곡을 작곡합니다.
 
언뜻 잘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그들에게는 아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부부는 9년의 결혼생활동안 3명의 아이를 낳았고 3명의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 입양한 아이 중 한명이 바로 '순이 프레빈'이었습니다. 특히 미아 패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국 아이인 '순이'의 입양에 큰 열의를 보입니다. 70년대 미국 법은 한 가정에 입양아를 위한 비자를 2개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어있었습니다. 즉 이미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한 미아와 안드레 부부로서는 더 이상의 입양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그러나 부부는 주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국회의원에게까지 연락을 하면서 새 법안틀 통과시킵니다. 순이의 입양에만 장장 2년이 걸렸다고 하는군요.
 
79년, 이혼한 미아 패로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옵니다.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우디 앨런'이 그 주인공이었는데요. 전 남편과 달리 아이들을 끔찍히 싫어했던 우디 앨런과의 결혼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며 '연인'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아 패로는 둘 사이의 아이인 새첼을 출산했고 남자아이 1명, 여자아이 1명을 공동입양합니다. 아이들의 실질적인 부모로서, 유명 영화 감독과 잘나가는 배우로서 그들의 관계는 완벽해보였습니다. 순이 프레빈의 누드 사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1990년, 우디 앨런이 찍은 순이 프레빈의 누드사진을 발견한 미아 패로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당시 받았던 충격이 고스란히 적혀있습니다. 미아 패로는 순이가 세상에서 가장 미운 아이로 보였지만 그래도 10년을 넘게 키운 아이를 계속 미워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순이를 용서하기로 합니다. 모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화해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우디 앨런까지 용서할 수는 없었죠. 두 사람은 결국 이별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이는 경악할만한 선택을 합니다. 자신을 거둬준 양어머니를 버리고 우디 앨런과의 결혼을 택한것이죠. 그들은 35살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97년, 결혼에 골인합니다. 말도 안되는 세 사람의 관계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언론에 집중 보도되며 '헐리웃 최악의 스캔들'로 자리잡습니다.
 
후에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사챌 패로는 아버지와 누나의 관계에 대해 '너무한 불륜이다'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와 부자지간의 연을 맺으며 도덕적으로 살 수 없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한편 이 스캔들을 계기로 배우 생활을 접은 미아 패로는 사회 활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순이를 제외한 4명의 자녀와 10명의 입양자녀들은 모두 잘 자라 사회에 진출했다고 합니다.
 
 
5. 세기의 커플 '브란젤리나'의 탄생, 안젤리나 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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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섯 아이의 엄마이자 브래드 피트의 연인으로, UN 난민기구 홍보대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 그러나 브래드 피트를 만나기 전 그녀의 이미지는 '남자 킬러'였습니다. 그녀는 찍는 작품마다 상대 배우와 스캔들이 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그녀는 영화 [헤커스]를 통해 조니 리밀러와 첫 번째 결혼에 골인하지만 2년여만에 이혼했고, '에어 콘트롤'에서 공연하면서 만난 빌리 밥 손튼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지만 이마저도 3년만에 끝나버리고 맙니다. 특히 빌리 밥 손튼은 졸리를 만나며 결혼을 약속한 연인 '로라 던'을 배신해 세간의 비판을 받습니다.
 
2005년, 헐리웃 최고의 섹시스타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서 만납니다. 당시 브래드 피트는 제니퍼 애니스톤과 결혼 상태였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했던 브래드와 원하지 않았던 제니퍼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최고의 잉꼬 커플이었던 두 사람의 이혼은 아무도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촬영 막바지부터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다정하게 있는 사진들이 파파라치를 통해 공공연하게 유포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2005년 1월,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은 공식적으로 이혼을 선언합니다. 당시 안젤리나 졸리는 세기의 커플을 갈라놓은 천하의 악녀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작품 활동과 지속적인 선행으로 차츰 대중의 인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브래드 피트와의 변함없는 애정 전선도 대중으로 하여금 그녀를 좋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브란젤리나 커플'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8년째 연애중입니다. 두 사람은 여섯 자녀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며 헐리웃 최고의 커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진=IMDB,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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