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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똑같을 수가!" 실제인물 VS 배우, 싱크로율 2부

13.07.03 13:54


저번에 작성한 '실제인물과 배우들의 높은 싱크로율'기사에 이어서 또다른 실제 인물들과 배우들을 소개하는 두번째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아래 이미지를 꼼꼼이 살피며 어디가 비슷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아울러 저번 기사에 보내주신 높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내용의 알찬 기사로 보답해 드릴것을 약속드리는 바이다.
 

1.조안 제트- 크리스틴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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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제트(우)
미국의 록 기타리스트,가수,작곡가,프로듀서이자 배우. 뇌쇄적인 눈빛과 여성답지 않은 간결한 목소리와 파괴적인 음색으로 7,80년대 최고의 락앤롤 스타의 정상에 오른 전설적인 여성 록커다. 남성 록밴드 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1976년 록음악계에 소녀들로 이루어진 5인조 록밴드 'The Runaways' 로 데뷔하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79년 밴드는 해체하지만 조안 제트는 이후에 2장의 솔로앨범과 'The Blackhearts'라는 밴드를 결성하며 여러 히트곡을 발표한다.
 
그 중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I Love Rock 'n' Roll" 이 있었고 이 노래는 팝 스타 브리티니 스피어스에 의해 2004년 댄스 팝 버전으로 발표되어 다시 크게 히트되었다. 그 외에도 대표곡으로 "Crimson and Clover," "I Hate Myself for Loving You," "Do You Want to Touch Me," "Light of Day," "Bad Reputation," "Little Liar." 등등이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좌)
조안 제트가 첫 음악활동을 시작했던 'The Runaways'밴드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조안제트 역할을 맡은 배우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였다. 검은머리에 뇌쇄적인 눈빛과 보이시한 외모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조그만 분장해도 완벽하게 재연할수 있었다. 특히 완벽한 1970년대의 조안제트가 되기위해 상징과도 같았던 긴 생머리를 자르는 과감함을 보여주었고 그동안의 이미지와 다른 터프하고 거친매력에 구부정한 자세에 기타를 연주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조안 제트 그 자체였다.
 

2.린다 러브레이스-아만다 사이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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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러브레이스(좌)
70년대 미국 포르노 영화계의 전설 적인 여배우. 1949년 평범한 경철관의 딸로 태어났지만 1972년 남편 척 트레이너의 권유로 [딥 스로트](목구멍 깊숙이)라는 영화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성감대가 목구멍에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이 포르노 영화는 당시 수준에 있어 파격에 가까운 노출수위와 묘사로 인해 보수적인 가치관이 강했던 70년대 미국 사회에 문제가 되면서 논란과 화제를 낳은 영화가 되었고 반전과 저항의 문화가 꽃피어오르던 당시의 시대상을 상징하는 전유물이 되었다.
 
그녀 또한 이러한 반항의 시대의 상징이 되었지만 두편의 포르노 영화를 찍고 영화계에 은퇴했다. 이 영화를 토대로 헐리웃의 진출을 꿈꿔왔던 그였지만 영화의 흥행수익은 그녀에게 돌아오지 못했고 성인배우라는 주변의 인식과 냉대 그리고  남편의 폭력은 그녀의 삶을 망가뜨렸다.
 
20년후 자서전을 통해 [딥 스로트]의 출연은 남편 척 트레이너가 자신의 머리로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을해서 출연하게 되었다고 밝히며 이후 '反포르노 영화 반대운동'에 앞장서다가 2002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우)
[맘마미아] 이후로 헐리웃의 말광량이 발랄녀를 상징하는 미녀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곧 개봉을 앞둔 '린다 러브레이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 [러브레이스]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다. 이 역할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트인 금발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당시 유행한 '파마 머리'까지 감행하는 변신을 선보였다. 게다가 실제인물인 성인 영화계의 스타인 만큼 여러 과감한 노출과 묘사도 예고되어 있어 '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과감한 도전인 셈이다. 수수하고 평범한 '린다 러브레이스'를 닮기위해 최선을 다해 평범해 졌지만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P.S
[딥 스로트]를 이야기 하자면 단순한 포르노 영화라고 정의하기 힘든 미국역사에 남을 최대의 사건이었다. 2만 5천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최종수익은 무려 6억 달러나 되었다. 지금의 멀티플렉스 극장 시스템과 블록버스터물의 기본 수익을 비교해 봤을때  상상도 할수없는 엄청난 수익이었다.
 
1970년 월남전으로 인한 반전분위기가 만든 저항의 문화와 닉슨 행정부가 주장한 보수적 사회가치가 충돌하게 되면서 당시 시대에 파격수위로 촬영된 [딥 스로트]는 음란물이란 이유로 상영중단과 제작진 체포라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대학생,문화-예술인,지식인 헐리웃 스타들까지 이에 반대했고 이들은 심지어 이 영화를 관람하며 지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의 여파는 닉슨 행정부의 붕괴를 가져왔고 보수주의 가치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일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영화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영화 [인 사이드 딥스로트]를 감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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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짐 모리슨-발 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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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모리슨(우)
미국의 가수이자 시인,작곡가,작가,영화 감독이다. 전설적인 록밴드 '도어스'의 리드 싱어이자 작곡가로 유명하다. 또한 여러 시집을 썼고,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71년 7월 3일, 목욕 도중 심장마비로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마약 과다 복용이다.
 
묘는 프랑스 페르라쉐즈 공동묘지에 있다. UCLA에서 영화학을 전공하였다. 27살에 죽은 뮤지션으로써 '27 Club'에 포함되어있다. (출처:위키백과)

발 킬머(좌)
짐 모리슨 영화를 향후에 다신 만든다 하더라도 외모와 내면까지 너무나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을 받은 '발 킬머'의 아성을 뛰어넘을수 있을까? 영화 [도어즈]의 발 킬머는 짐 모리슨의 정신까지 닮아진것 같았다. 자유로운 생각과 감수성 어린 음색과 대사까지…짐 모리슨 자체를 넘어 죽은자와 교감한 듯한 그의 연기는 압권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영화 [도어즈]는 감독인 올리버 스톤의 개인적인 시선에 의해 창조된 작품 이어서 너무나도 신화성이 짙은 작품이었다. 때문에 '도어즈'의 키보드를 담당했던 '레이 만자렉'은 영화를 보고 "올리버스톤의 안티가 되겠다"라며 진짜 짐 모리슨을 표현하지 못한 이 영화에 반감을 들어내곤 했다. 그렇다면 짐 모리슨을 연기한 발 킬머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새로운 뮤지션이 되었던것 아닐까?
 

4.자니 캐쉬- 호아킨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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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캐쉬(아래)
1950∼6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었던 컨트리 가수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중 한명. 깊고 낭랑한 중음역대의 보컬과 간결한 기타와 함께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진보적이고 독특한 사운드를 추구한 뮤지션이다. 1950,60년대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승승장구 하였지만 마약 복용과 불안한 결혼 생활로 방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음악으로 이를 극복하게 되고 동종업계에 있던 또 한명의 유명 여성 컨트리 가수이자 동료인 '준 카터'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하면서 컨트리 음악계의 전설적인 앨범과 신곡을 쏟아내게 된다. 컨트리 음악계 에서는 이단아 이자 개혁적인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는 톱 뮤지션이다. 

호아킨 피닉스(위)
[글레디에이터]의 '코모두스'를 연기하며 우리에게 너무나 잘알려진 스타배우. 그는 전설적인 컨트리 뮤지션 '자니 캐쉬'와 '준 카터'의 러브스토리와 인생을 담은 [앙코르]에서 방황,성공,사랑이라는 굴레에 살아온 젊은시절의 자니 캐쉬를 열연했다. 자니 캐쉬 특유의 기타 연주 제스처와 무대매너 까지 완벽하게 재연했으며 무엇보다도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배우였나?' 라고 의심할 정도로 컨트리 가수에 맞먹을 노래 연기를 펼치며 2006년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버린 형 리버 피닉스의 못다이룬 꿈을 이룬 셈이엇다.

P.S
영화 [앙코르]에서 자니 캐쉬를 설레게 만들었던 '준 카터 캐쉬(좌)'를 열연한 '리즈 위더스푼'(우)의 싱크로율도 함께 비교해 보는것도 재미있다. 리즈 위더스푼은 이 연기로 200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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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엘리자베스 여왕-헬렌 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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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우)
대영제국의 살아있는 실질적인 군주. 연합왕국(聯合王國)의 왕이자 자치령 각국의 왕이며 나아가 독립국들의 결합체인 '코먼웰스의 수장'으로서 대관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이후 영국 국왕으로서의 다망한 정무를 처리하는 한편, 수많은 외국방문으로 세계 각국과의 우의를 다졌다. 슬하에 황태자인 찰스와 차남 앤드류,3남 에드워드와 장녀 앤 등 3남 1녀를 두었다. 2002년 2월 6일 즉위 50주년 축하행사로 황금마차 퍼레이드,기념주화 및 축하복권 발행,여왕부부의 영연방 국가 순방 등을 가졌으며,역대 왕 중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영국민에게 신뢰와 인기도가 높다.

헬렌 미렌(좌)
엘리자베스 1세 재임 당시 가장 큰 유일한 오점은 1997년 찰스 황태자의 전 부인인 '다이애나 비' 사망 사건의 여파였다. 영국 왕실에 '이혼'이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데 이어 '다이애나 비'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손자인 두 왕세손들의 상처와 영국 왕실의 계획된 살인이라는 음모론 까지 제기되 '영국 왕실'은 그야말로 위기였다. 아들의 실수와 손자들의 아픔을 동시에 느끼며 왕실을 지켜야 했던 그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심정을 '헬렌 미렌'은 신들린듯 연기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평소 보여주었던 강인한 내면의 카리스마를 똑같이 재현해내었으며 그안에 숨겨진 인간적인 나약함 까지 갖고있는 할머니이자 어머니의 심정까지 표현해낸 진정한 '여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인물과 배우의 싱크로율 비교는 다음에도 계속된다.
 
 
(사진=img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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