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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리뷰: 남자 VS 여자, 누가 더 우월한가? ★★★☆

17.11.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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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2017]
감독: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출연:엠마 스톤, 스티브 카렐,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사라 실버맨, 빌 풀만

줄거리
변화의 바람이 거세던 1973년, 여자 테니스 랭킹 1위, 전 국민이 사랑하는 세기의 챔피언 ‘빌리’(엠마 스톤)는 남자 선수들과 같은 성과에도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상금에 대한 보이콧으로 직접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설립한다. 남성 중심 스포츠 업계의 냉대 속에서도 ‘빌리’와 동료들은 직접 발로 뛰며 협찬사를 모집, 자신들만의 대회를 개최하며 화제를 모은다. 한편, 전 남자 윔블던 챔피언이자 타고난 쇼맨 ‘바비’(스티브 카렐)는 그런 ‘빌리’의 행보를 눈여겨본다. 동물적인 미디어 감각과 거침없는 쇼맨십을 지닌 그는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기 위해 ‘빌리’에게 자신과의 빅매치 이벤트를 제안하고, ‘빌리’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시합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직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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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세기의 대결'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복싱, 격투기를 비롯한 축구, 야구와 같은 구기 종목과 육상에서도 이러한 대결이 빈번하게 일어나 모든 스포츠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세기의 대결사(史) 중에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법한 대결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테니스 대결을 한다면?' 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대결이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이하:[빌리 진 킹])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법한 남자와 여자의 성(性) 대결을 직접 재연해 당시 대회에 참가한 인간 군상들의 심리와 대회의 의의, 비하인드를 현재의 시각에서 재정립하려 한다. 

세기의 성(性) 대결은 어떻게 해서 진행되었을까? [빌리 진 킹]은 당시 경기가 열린 시대인 1973년에 주목한다.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기로 냉전 시대로 대변된 보수주의가 전쟁의 후유증으로 위세가 떨어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로 인해 히피 문화, 로큰롤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와 여성의 인권 개선이 요구되면서 세상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영화는 그러한 변화의 시기를 살아간 남녀의 모습을 비추며 당시 세기의 대결이 지닌 의의를 강조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며, 두 주인공인 빌리 진과 바비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격을 깊이 있게 다루려 한다. 

남성 선수들보다 낮은 처우 개선에 화가나 여성 테니스 협회를 주도한 당대 최고의 여성 테니스 스타 빌리 진은 시대에 반(反)하는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성 평등을 추구하는 선구자처럼 그려진다. 그러한 그녀의 이면에는 테니스 스타 특유의 승부욕과 뒤늦게 찾아온 성(性) 정체성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그녀를 영웅 또는 위인으로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인해 의도치않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스포츠에 대한 열망으로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는 이기적인 성격 등 단점까지 비중있게 다룬다.

그녀의 상대인 바비는 남성의 우월함을 상징하는 대상처럼 그려지지만, 영화는 과거의 명성과 달리 심심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우선적으로 비추려 한다. 은퇴 후 더이상 코트에 설수 없어 장인어른이 준 회사 자리를 지켜야 하는 그는 활력을 잃은 중년 남성의 씁쓸한 현실을 대변한다. '인생은 도박이다' 라는 신조에 따라 과감한 도전과 잇단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시기가 아니다. 집에서 아내와 아이의 비위를 맞춰줘야 할 정도로 자신을 잃어버린 그는 막대한 자산을 동원해 '성대결' 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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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은 승부의 주체인 두 인간 군상의 드라마와 이야기를 다루며 후반부에 이 둘의 대결을 의미있게 조명하려 한다. 남녀를 대표하는 스타들이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허물을 지닌 인물들로 그 점에서는 모두 다 평등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등함 속에는 현실의 변화와 보수적 가치를 지키려는 이념과 대중의 상반된 열망이 담겨져 있다. 이로 인해 개개인의 사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후반부 세기의 대결에서 사명감적인 이야기로 전환하게 된다. 

이 경기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끌어내려는 사명감을 지닌 빌리 진과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들을 이용해 남성의 우월함과 명성을 되찾으려는 바비 모두 각자 이겨야 할 목적이 담겨있다. 그를 응원하는 남녀 관중의 모습은 변화와 보수적 가치의 대결임을 확연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전반과 중반 동안 의미부여에 신경 쓴 나머지 다소 미진한 전개와 산만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영화는 후반부 대결을 통해 박진감 넘치는 테니스 경기의 진수를 재연하기에 이른다. 1차전에서 여성 현역 챔피언을 이긴 바비는 느슨하게 경기에 임하며 남성 특유의 힘으로 빌리를 상대하지만, 개인보다 '사명감'을 우선시하는 빌리는 빠른 운동신경과 철저한 전략으로 바비의 체력을 떨어뜨리며 팽팽한 균형의 경기를 이끌어 나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경기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남녀의 우위를 따지며 홍보하던 세기의 대결이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 두 남녀 선수의 모습에서는 허무함과 눈물만이 남겨졌다. 성적인 우위를 다루려는 것은 애초부터 의미 없는 시도였으며, 승자와 패자만이 남겨졌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승자가 되거나 패자가 된것도 아니다. 치열한 대결을 펼친 그들을 위로하고 축하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깨달은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승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성평등의 시대를 반기는 여성, 성소수자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평안함을 전해주는 가족의 존재…[빌리 진 킹]이 말하고자 한 세기의 대결의 가치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70년대의 패션과 정서까지 완벽하게 재연한 영화의 외형적인 모습과 실존하는 두 사람의 외형과 인간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한 두 남녀 배우의 연기도 이 영화의 숨겨진 또 다른 볼거리다.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은 11월 16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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