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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이 전하는 배우 송강호의 소름돋는 천재성

17.08.07 16:21


*영화의 결말, 중요한 부분이 언급됩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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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의 언론 시사가 끝날 때 까지만 해도 지금의 흥행 열풍을 이어나갈 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대중 영화로서의 가치에는 무난해 보였으나, 배우 송강호가 출연하는 시대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들어야 했기에 기대했던 큰 흥행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의 시대와 대중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공감과 희망을 이야기하길 원하고 있다. 장훈 감독은 바로 그러한 시대의 요구를 잘 알고있는 충무로의 몇 안 되는 유능한 연출자다. 기존의 근현대사물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것 같지만, 그 안에 담겨진 깊이 있는 디테일과 정서는 장훈 감독과 송강호가 아니었으면 표현하기 힘든 요소였다. 이번 장훈 감독과의 만남은 바로 그러한 비하인드와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과물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항상 그렇듯, 영화를 만들 때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아쉬운 부분들은 꼭 있다. 이 영화 같은 경우는 어느 순간 관객처럼 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서, 배우들의 연기 때문인지 상당히 의미 있게 볼 수 있었다. 그전에 했던 영화들 보다도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고 한 작품서 모이기 힘든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더욱 의미가 남은 것 같았다. 한신, 두신 택시가 지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장면이 완성돼서 너무 좋았다. 


-다른 광주 소재의 작품들과 달리 관찰 적 시점의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방식을 기획했나?

기획 개발은 제작사에서 했다. 실제 주인공인 위르겐 힌츠펜터 기자가 송건호 언론상을 받으면서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언급해 기획했고, 그것을 엄윤나 작가님이 잘 완성해 주셨다. 그분들이 기획을 했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내가 마무리를 했다. 


-토마스 크레취만을 캐스팅 하게 된 계기는?

독일 기자 역할 이어서 다른 국적의 배우보다는 독일 현지 배우가 해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알게 된 토마스 크레취만이 생각났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연기자여서 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혹시나 몰라서 영문으로 된 시나리오를 보내드렸는데 신기하게도 하겠다고 하는 거였다. (웃음) 비록 [피아니스트]에서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지만,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였다. 다른 작품을 봤을 때도 눈빛으로 하는 연기들이 인상적인 배우였다. 그런 분이 주인공 피터 역할을 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택시운전사]는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에도 인간의 정겨움을 강하게 담은 작품이다.

비극적인 사건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라기보다는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출발한 영화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광주 시민이 아닌 외부인을 대변하는 심리적 변화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그분들이 보여준 인간으로 해야 할도리와 서로를 위해주고 도와주는 느낌들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다. 시나리오에 느꼈던 대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니까 영화가 정겹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둘러싼 현실적인 상황이 관객들에게 그 자리에 가서 있는듯한 느낌으로 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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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광주 시민들을 향한 폭력과 학살을 바라만 보고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주인공들의 입장이 너무 괴롭게 그려진다. 그 이면을 부각한 이유는?

송강호 선배님이 출연한 [변호인]과 [택시운전사]에는 차이가 있다. [변호인]은 인물이 변화를 겪어서 다른 인물이 되는 지점이라면, [택시운전사]는 아주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여전히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영웅이 되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보통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렸던 것처럼 바라만 봐야 하는 느낌이었고, 그것이 만섭이라는 인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봤다. 만섭의 임무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끝까지 태우고 가는 게 임무다. 만섭은 중후반부에 광주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돌아서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유턴 하며 돌아가게 되고, 결국 진실을 응시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그의 도달점이라 생각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을 싸우고 구하는 과정은 영화적으로 충분히 그릴수 있는 요소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인물의 모습이 아니다. 송강호 선배님께서 너무나 잘해줘서 고마웠다. 


-송강호, 유해진 등 애드립을 잘사용하는 배우들이다. 영화가 그들의 비중을 크게 잡는데,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면이 크게 부각된다. 그런 자연스러움을 의도하려 했나? 

아시다시피 그분들은 이미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가지신 분들이다. (웃음) 이 분들 처럼 애드립을 잘하는 분들이 또 누가 있을까? 그 외에도 작은 부분에서도 디테일을 살리려는 모습을 보면 두 분 다 신기하고 놀라운 사람들이다. 함께 작업하면서 "어떻게 이 장면을 이렇게 살리고 해석하지?" 라며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웃음) 재식(류준열)이 태술(유해진)의 집에 와서 노래하는 장면에서 가족들이 일어서서 춤추는 설정은 사실 각본에도 없는 장면이었다. 배우들이 약속도 없이 다 같이 일어난 장면이어서, 그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을 유도한 사람이 바로 송강호 선배였다. 송 선배가 먼저 일어나 춤을 추니 유해진, 토마스 크레취만 모두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웃음) 참, 그러고 보니 송강호 선배의 디테일한 애드립에 감탄한 순간이 또 있다. 영화 후반부 피터가 필름을 숨긴 과자 통에 리본을 묶을 때 만섭이 도와주는 장면이 있다. 만섭이 피터의 리본을 만지려 해서 다시 묶어주나 했는데, 선배가 리본이 잘 묶이도록 눌러주는 거였다. 그걸 보면서 감탄하게 되었다. 그 장면이 바로 만섭과 피터가 서로를 도운 관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런 디테일 까지 예상하며 연기하는 걸 보면 선배는 디테일 이란 것을 잘 아는 연기자다. 각본에 없는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캐치해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바로 그분의 재능이다. 현장에서 보면 더 놀랍다. 관객들은 맥락상 대충 이해하겠지만, 그 맥락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그 장면을 보면 놀라울 때가 많다. 


-듣기만 해도 놀랍다. 또 그런 장면이 있다면 더 듣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니 또 있다. (웃음) 엄태구가 연기했던 박중사가 번호판을 발견했을 때의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만섭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박 중사를 지켜보는 장면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사실 영화에서 사용되지 않은 또 다른 테이크가 있는데, 같은 감정인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장면을 다르게 표현했다. 박 중사에게 들킨 만섭이 당황한 듯 시선을 회피하며 목을 때리고 있는 거였다. 당황한 인간의 모습을 그런 식으로 담아내는 것은 정말 상상치도 못한 표현이었다. 그러한 짧은 순간에도 만섭은 어떻게든 모면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 외에도 기사 식당에서 신나게 걸어가며, 흥얼거리는 모습도 선배님이 직접 연구한 장면이다. 이처럼 관객들이 보지 못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배우 송강호가 지닌 재능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설정과 다소 동떨어져 보인 후반부 추격전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 

실제 광주의 택시 운전기사님들이 그러한 희생정신을 발휘했다는 것을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대목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일반 액션 영화서 그려지는 화려한 카체이싱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신경 썼다. 화려하거나 멋있지 않고 초라하지만 정의로운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좋게 그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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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인 김만섭을 비롯해 당시 군인이었던 엄태구가 연기한 박 중사를 통해 이 영화가 인간의 자각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려는 작품임을 인지시켜 주고 있다.

실제 주인공 피터께서 살아생전에 "만약 모든 사람이 자신을 막았다면 나는 광주를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셨다.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비롯해 모든 광주 시민들이 도와줬다는 의미였다. 당시 군인들은 명령에 복종하고 수행해야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한 사람으로서 움직여야 했던 양심적인 인물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박 중사는 군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깨어있는 양심을 상징한 캐릭터다. 사실 이 캐릭터가 캐스팅이 너무 어려워 고민이었다. 짧은 분량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할 역할이었기에 이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때 송강호 선배가 [밀정]에서 함께 일한 엄태구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는 거였다. 그러면서 과거 내가 심사를 맡았던 단편 영화제서 그 친구의 연기를 본 적이 있어서, 직접 만나보기로 했고 대화를 통해 그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 부담이 컸을 역할이었는데, 엄태구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유해진 배우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이제는 조연이 아닌 주연 배우이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다 잘되고 있는데, 다소 적은 분량의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출연을 해준 것이다. 유해진이 아니었다면 광주 시민을 대변하는 황태술의 캐릭터가 깊이 있고, 정감있게 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가짜 뉴스의 부각 또한 인상적이다. 그동안 광주 소재 영화서 이 부분을 중점 있게 다룬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 함께 본 기자들도 보는 내내 반성했다고 한다. 

사실 [택시운전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다. 독일 외신기자, 외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주 이야기, 소시민이 시대의 위험한 상황에서도 잘 해낸 이야기, 그리고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의 초고에는 언론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꽤 많다. 극 중 만섭이 광주를 벗어난 외지의 한 식당서 목격하게 된 뉴스와 시민들의 반응이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지역의 언론인들도 광주에 민주화 운동이 아닌 폭동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진실이 1987년이 되어서야 알려졌다고 한다. 그 정도로 광주 민주화 운동은 통제되었고, 가짜 뉴스가 국가의 통제하에 진행된 것이다. 외국에서는 외신 기자들의 노력을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외신을 통해 이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렇게 해도 극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진실이라고 한다. 가짜 뉴스에 대한 부각보다는 그 시대의 통제된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게 옳다. 


-정서적 요인 외에도 영상미와 분위기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다. 특시 어둠속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과 골목길에서 자행되는 군인들의 만행을 지옥도처럼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7, 80년대 누아르, 범죄 영화의 분위기라고 할까?

그것은 당시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사진 자료를 보고 재연한 이미지였다. 골목에서 시민들을 폭행하는 건 그 당시 광주 시민의 증언을 토대로 완성했다. 사실 그 폭력은 저녁보다는 아침에 많았다고 한다. 저항할 수 없게끔 사람들의 양팔을 묶은 다음, 옷을 벗겨서 수치심과 무서움을 주려 했다고 한다. 현실은 더 참혹했는데, 영화에서 전달할 수 있는 톤으로 최대한 다루려 했다. 그럼에도 실제 광주 시민들이 겪은 것보다는 일부분에 불과한 장면이다. 이 장면이 그 시절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몰랐던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강하게 다가왔으면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서 만섭이 마지막에 가게 되는 목적지는 현시대를 향한 메시지라고 봐야할까?

*목적지는 영화의 매우 중요한 스포가 될 수 있는 대목이어서 '그 곳' 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관객들이 만섭을 따라서 여러 사건을 겪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현재로 돌아오길 원했다. 당시 현재의 배경은 2003년이지만, 지금처럼 느낄수 있는 지점에서 관객들이 현재로 돌아오길 바랐다. 과거의 진실을 목격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복합적으로 느껴봤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담아낸 장면으로, 시나리오 원본에 있었던 설정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곳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나 달라진 의미부여 때문에 이 장소에 대한 대사를 바꾸려 했지만, 결국 원래 의도대로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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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물이었던 위르겐 힌츠팬터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감동을 많이 주신 분이었다. 기자로서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그분이 아주 특별하고 어렵고 남다른 기자정신을 가져서가 아니라 본인의 일에 대해 상식적으로 당연하게 느끼고 계셨기에 존경스러웠다. 너무 한결같은 분이셨고, 우리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몸이 아프신 과정에도 티를 안 내시고 유머를 던지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너무나 특별했고 영화를 보면서 그분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너무나 큰 배움의 순간이었다. 


-지금까지의 장훈 감독의 영화를 본다면 두 남자의 관계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대다수다. 감독님에게 두 남자란 어떤 의미인가?

글쎄, 반복되는 우연이라고 할까? (웃음) 그런 의도로 한 적은 없는데 하다 보니 계속 그런 소재의 작품을 연이어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참 우연 같다. 


-장훈 감독 영화의 장점은 흥미롭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토리에 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작품에 따라서 각색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의 기획을 들었을 때 제작사가 준비한 기획이 너무 좋았다. 명확하고 방향성이 있어서 좋았다. 최초 이 이야기를 완성하신 분들이 잘 완성해 주셨기에 가능했다. 엄유나 작가님이 만섭외의 여러 캐릭터와 그들의 드라마를 잘 완성해 주셔서 수정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차기작 [궁리]도 두 남자의 이야기라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인가?

이현택 선생님의 소설이 원작이다. 세종 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이며 사극이지만 모던한 느낌으로 끌고 갈 계획이다. [택시운전사]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대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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