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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리뷰: '국뽕''애국'없는 담백한 독립군 첩보물 ★★★☆

16.08.2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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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2016]
감독:김지운
출연: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줄거리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송강호)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으로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고, 한 시대의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쌍방간에 새어나가고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폭탄을 경성으로 들여오기 위해, 그리고 일본 경찰은 그들을 쫓아 모두 상해에 모인다. 잡아야만 하는 자들과 잡힐 수 없는 자들 사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이 숨가쁘게 펼쳐지는 긴장감 속에서 폭탄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경성으로 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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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대상과 등장인물의 면모 탓에 [밀정]은 1년 전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자연히 떠오르게 한다. [암살]이 유머와 로맨스의 전형을 활용한 가벼운 분위기의 독립군 액션 영화를 취했다면, [밀정]은 [제3의 사나이]와 같은 1950~60년대의 고전 스릴러의 영상미와 묵직한 설정을 강점기 시대의 역사와 조화를 이루려 한다. 근래 들어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냉철한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면모를 생각해 본다면, [밀정]은 어두운 느와르 풍의 스릴러에 가깝다. 

그래서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다는 이유로 그만의 유머와 인간미 있는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내려놓는 게 좋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를 비롯한 [밀정]의 모든 인물을 본인의 생존을 위해 서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살 얼음판 위에 위치시켜며 긴박한 심리전을 연출한다. 누군가 배신할 수 있는 상황탓에 캐릭터들은 한없이 냉정해야 하고, 그로인해 살벌한 기운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러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듯, [밀정]은 빠른 전개보다는 고전 첩보 스릴러물이 사용했던 인물의 심리와 배경의 미장센이 담긴 디테일한 묘사와 세밀한 전개에 집중한다. 이는 내부의 첩자를 이용하려는 일본군과 의열단 간의 심리전을 보다 긴장감 있게 높여줄 영화만의 흥미로운 요소가 된다. 김지운 감독은 일본군과 의열단의 영화 속 대치 상태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스릴러적인 영화만의 정석을 만들어낸다. 메인 상으로는 폭탄의 존재 여부가 이들의 대치 목적이었으나, 양측의 정보가 새어나가게 되면서, 내부의 배신자 '밀정'을 가려내기 위한 또 다른 임무가 발생하게 된다. 

영화는 그 가운데 위치한 인물로 친일파 캐릭터인 주인공 이정출을 내세운다. 처음에는 의열단 일망타진을 위해 리더에게 접근했던 그는 반대로 의열단이 자신에게 접근하려 하자 정체성에 갈등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일본군과 의열단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러오면서, 일본군과 의열단 양측의 상황을 유심 있게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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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내부에 들어가 그들의 환심을 살 때 까지는 적이라 생각했으나 너무 깊게 들어간 그는 자신이 그들의 동지가 되어버린 듯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중심적인 인물이 이런 혼란을 느끼게 되면서, 영화는 이를 활용한 또 다른 위험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것은 [밀정]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기차에서의 대치 장면으로, 영화의 모든 긴장과 갈등 요소가 충돌하게 되는 순간이다. 

각 집단의 대치 중인 상대방들이 모두 모였다는 점에서 한순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김지운 감독은 이마저도 냉철하고 진중한 서스펜서 스릴러로 다루려 한다. 상당량의 폭탄을 실은 기차 안에서 일본군은 밀정을 통해 변장한 의열단을 찾고, 의열단은 자신들의 작전을 노출한 밀정을 직접 찾아내려 한다. 그 중심에는 아직 노선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이정출이 있었고, 일본군과 의열단 모두 그를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경성에 도착하는 제한적인 시간, 이정출의 심리적 갈등, 두 조직 간의 두뇌 싸움이 진행하게 되면서 영화는 일촉측발의 상황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배우들의 표정, 내면 연기와 기차 안의 배경을 다양한 시점에서 포착한 카메라의 영상과 조용하면서도 빠른 심장 박동을 연상시키는 배경 음악은 기차 안의 서스펜서적 상황을 더욱 긴박하게 만들어주며 최고조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후 영화는 여전히 지속되는 이청출의 내적 갈등을 통해 강점기 시대의 개인의 혼란을 담아내며, 시대적 상황이 지니고 있는 의미부여도 놓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묵직한 분위기에 빠져들다 예상치 못한 유머 코드까지 등장시켜 보통의 첩보 스릴러물에서 느끼기 힘든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다.  

이렇듯 냉철한 분위기와 세밀한 전개로 최고도의 긴장감을 불러온 [밀정]은 후반부에 들어오게 되면서 빠른 전개를 이어가게 된다. 대치의 최고점에 위치한 의열단과 일본군 캐릭터를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던 영화만의 장점인 세밀함이 사라지게 되면서 중반부와 다른 긴장감의 강도를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이는 이청출과 김우진의 관계를 정서적으로 그려내려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전반부에 서로를 경계하고 이용하려 한 이들이 감정적인 교류와 정서를 나눌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술을 함께 마시고, '형, 동생' 관계를 유지했다고, 깊은 관계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하기에는 세밀한 영화의 전개 방식과 다소 어울리지 않아 공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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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드라마를 강조하는 정서적인 장면과 일부 묘사에서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차라리 마지막까지 스릴러와 대치 관계의 끈을 이어가며 긴장감을 지속했더라면 어땠을까? 후반부의 드라마에 대해서는 관객마다 느끼는 차이가 남달라 호불호의 반응을 가져다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아쉬움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 출연진의 연기로 만회하는 편이다. 전작보다 힘을 덜 뺀 편이었으나,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인간미 있게 그려낸 송강호는 말이 필요 없었으며, 공유는 여태까지 보여준 연기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보여주었다. 한지민 또 한 최고점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여성 독립투사를 연기해 극의 드라마를 구축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맡았다.  

가벼운 분위기를 배제 한 체 묵직한 분위기와 어두운 고전 스릴러의 면모를 강점기의 시대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작품중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언급할 만한 작품이다. 전자서 언급한 [암살] 보다 흥미적인 면모에서는 조금 약하게 느낄 수 있지만, [밀정]만이 선보인 정서와 이야기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큰 인상을 남겨줄 것이다. 

[밀정]은 9월 7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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