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2015]
감독:민규동
출연:주지훈, 김강우, 임지연, 이유영, 천호진, 차지연
줄거리
연산군(김강우)은 임숭재(주지훈)를 채홍사로 임명하여 조선 각지의 미녀를 강제로 징집했고, 그들을 운평이라 칭하였다. 최악의 간신 임숭재는 이를 기회로 삼아 천하를 얻기 위한 계략을 세우고, 양반집 자제와 부녀자, 천민까지 가릴 것 없이 잡아들이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임숭재와 임사홍(천호진) 부자는 왕을 홀리기 위해 뛰어난 미색을 갖춘 단희(임지연)를 간택해 직접 수련하기 시작하고, 임숭재 부자에게 권력을 뺏길까 전전긍긍하던 희대의 요부 장녹수(차지연)는 조선 최고의 명기 설중매(이유영)를 불러들여 단희를 견제한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시작되고, 단희와 설중매는 살아남기 위해 조선 최고의 색(色)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게 되는데…
[간신]은 이준익 감독의 2005년 작품 [왕의 남자]에 이어 연산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이번에는 왕을 타락시킨 '간신'의 시점에서 연산군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판소리 음악을 배경으로 연산군과 간신 무리의 패악을 어두운 뮤직비디오 형태의 역동적인 영상으로 담아내며, 갈 때 까지 간 인물들의 모습에 초첨을 맞출 작품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는 왕과 신하라는 '명예'로운 위치에 있는 연산군과 임숭재를 '망나니'에 가깝게 묘사해 흥미를 자아낸다.
어미니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에 자극받은 그는 이성을 상실한 채 관련 인물들을 직접 심판하고, 무덤을 파 뼈를 부수는 등 여러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달랠 수 있는 것은 그림, 시와 같은 예술 활동으로 [쿼바디스]의 폭군 네로 황제와 같이 그려진다. 연산군이 그런 기이한 행동을 반복할수록 그를 부추긴 간신 임숭재의 권력은 더욱 커져만 간다. 주군의 아픔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그는 사석에서 연산군을 비웃으며, 그의 행동과 권력을 따라하며 타인 앞에서 누린다. 그야말로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척 하는 악인의 표상인 셈이다.
두 남자 캐릭터와 엮이게 되는 여성 캐릭터들 또 한 이에 뒤지지 않는 극단적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다. 연산군의 쾌락을 위해 강제로 징집된 1만 미녀의 일원으로 뽑히게 된 그녀들은 조선 최고의 '색(色)'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게 되고 자연히 경쟁하게 된다. 그녀들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위치의 최고가 되려는 것은 개개인들이 원하는 욕망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표에 사로잡힌 그녀들이 '색' 수련을 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대목 중 하나.
파격적인 포스터와 영화의 소재가 예고한 것처럼 [간신]의 성(性) 묘사는 수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위치를 오간다. 올누드 장면은 물론이며, 자극적인 대사, 여성의 신체 부위를 섬세하게 영상에 담아낸 수련 장면이 그것이다. 시각적 자극을 위한 묘사로 보이지만, 이는 B급 사극 에로 영화의 대명사와 같았던 [뽕] [변강쇠] [옹녀]를 연상시키는 요소들로 이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작품속 소재로 완성하는 과정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희와 설중매가 서로 다른 매력과 장기로 연산군을 유혹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설중매가 특유의 관능미로 왕의 성적 본능을 자극한다면, 단희는 자신의 단아한 미모 속에 감성적인 시어와 대사를 통해 연산군의 감정을 자극하는 식이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여자의 대립을 보여주는 동시에 연산군의 내면을 두 개로 나눈 묘사라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간신]은 이처럼 극과 극 성향과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한 공간으로 모아 역사에 대한 풍자, 정의,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추한 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가 어떤 결말을 향해 치달을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게 되며 순도 높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파격적인 출발과 전개를 보여준 [간신]이었지만, 문제의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방향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표류하기 시작한다.
[간신]은 초반부터 이어지 파격적 설정에 피로를 느낀 듯 중반부터 정서적으로 심하지 않은 멜로물로 변화를 주려한다. 욕망의 극단을 보여준 악인 숭재와 왕에게 접근하려 하는 단희가 그들이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두 인물들이 '사랑'이라는 어울리지 않은 관계로 엮이게 되면서 영화가 추구하려 한 방향성은 모호해지고 긴장감마저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 두 인물의 사랑 설정이 정교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산만함과 혼란만 부추기게 된다.
특히 이 부분과 관련된 설정은 실존인물이자 역사서에 최악의 '간신'으로 기록된 임숭재를 미화한 듯한 인상을 줘 영화적 상상력의 지나친 범위를 보여준 것 같았다. 아무리 영화가 악인을 달리 평가하거나 멜로물의 주인공과 같은 친근한 인물로 만들 수 있다 한들 그 조건에는 허구적 설정이 아닌 어느 정도 역사적으로 검증된 부분이 있어야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간과한 민규동 감독의 시도는 위험하면서도 불편했다.
이러한 설정은 극의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진부한 전개만 반복하며 지루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영화가 초반부터 유지해온 '색'과 '욕망'의 의미는 무의미해져 버리고 극의 중심으로 드러나야 할 연산군의 캐릭터는 광기에 치달은 '미친 군주'로 정의내리며 단순화시킨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나마 방향을 잃은 이야기 속에서 출연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주지훈은 극의 중심인물을 맡을 정도로 극과 극을 오가는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김강우, 임지연, 천호진 또 한 제 역할을 다했다.
무엇보다 데뷔작에서 파격 노출을 선보였던 임지연과 이유영은 이번 작품에서도 노출을 불사하며 자신들이 연기해야 할 여인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완성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노출 연기에 부담을 버리며, 여러 장면에서 과감한 연기력을 선보인 두 사람은 여배우 기근에 시달린 한국 영화계에 '단비'와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했다.
[간신]은 역사 마저 거부한 광기의 시대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간신'이 되어야 살 수 밖에 없는 권력의 슬픈 이면을 이야기해 현재를 재조명하려 한다.
[간신]은 5월 21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