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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엄스, 그와 함께한 90년대는 행복했다

14.08.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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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McLaurin Williams
(1951.7.21~2014.8.11)
 
 
"이제야 1990년대가 끝났군요"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던 날 한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는 이같은 말로 그의 죽음을 추모했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영향을 주었던 '아이콘' 같은 존재들의 퇴장은 그 시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의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아 슬프게 다가온다. 추억은 영원하지만, 그 대상이 없다면 그 추억은 의미 없이 느껴진다.
 
로빈 윌리엄스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90년대의 또 다른 종말을 이야기 한 것과 같았다. 90년대 유년기를 보내고 사춘기를 맞이한 세대로서 그 당시 그가 우리에게 선보였던 영화는 우리에게 적잖은 영향을 남겼다. 바로 어른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가 연기하는 작품 속 주인공은 성인이지만 아이들보다 더 유치하고 철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의 마음과 시각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던 '공감하는 어른'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어른들에게도 순수한 면이 있고 그들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순히 웃고 즐겁게 즐기는 영화를 넘어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따뜻한 정서가 남겨져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기분 좋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로빈 윌리엄스는 어른과 아이들의 정서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가교'였다.
 
돌이켜보면 그가 활발하게 활동한 90년대의 출연작은 재미있는 면을 지니고 있다.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출연한 작품은 가족/어드벤처 영화 였으며 이후의 90년대 말의 출연작은 어른의 시선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마치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인생을 배우게 되는 과정을 보는듯했다. 
 

*어린이보다 더 어린이 같은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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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외쪽부터 시계방향) 후크,알라딘,쥬만지,미세스 다웃파이어
 
 
코미디언 출신으로 우연히 출연한 영화를 통해 80년대 명작인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로 따뜻한 정서를 지닌 배우로 인상을 남기게 된다. 영화 속 그의 아이 같은 미소를 본 스티븐 스필버그는 '성인이 된 피터 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영화 [후크]에 과감하게 주연으로 캐스팅하게 된다. 땅 딸만 한 키에 약간은 통통한 그였기에 피터 팬 역할에 우려 섞인 시선들이 많았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당연히 난감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배 나온 뚱보 어른이 자신의 본 과거인 피터 팬의 기억을 회복하고 순수함을 찾아 해맑은 미소로 하늘을 날게 될 때 남녀노소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그의 아이같은 미소는 피터 팬 그 자체였고  나이 먹은 어른들 모두의 감성을 자극했다.
 
[후크] 출연 이후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지니'의 목소리를 부탁하게 된다. 코미디언 배우 특유의 재치와 유머러스한 성향을 지닌 동시에 [후크]에서 보여주던 천진난만한 연기를 선보인 그답게 '지니'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담당하는 주요 캐릭터였다. 원작에서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신비함과 무서움을 지녔던 요정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친근한 성향을 지닌 알라딘의 친구로 재구성되었다. 로빈 윌리엄스 특유의 재치있는 연기를 즐겁게 감상하던 관객들은 작품속의 아름다운 화면과 환상적인 OST를 함께 접하며 뜻하지 않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이후 출연한 [미세스 다웃 파이어]는 [후크]의 아이 같은 성향과 [알라딘]의 입담이 결합된 작품이었다. 극 중 그의 역할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철없는 가장에 다양한 목소리 재주를 가진 만화 성우였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삶을 즐기려 했지만, 현실을 중요시하는 아내와의 의견 충돌로 이혼을 하게 되고, 다시 가족을 찾아오기 위해 다웃파이어 여사로 여장해 헤어진 가족과 만나게 된다. 완벽한 할머니로 변신한 로빈 윌리엄스의 분장은 당시 최고의 화제였으며 여자 분장으로 인해 생긴 애로점과 연일 반복하는 실수가 웃음의 포인트로 적용되 엄청난 흥행열풍을 불러왔다. 하지만 영화는 웃음보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인상깊은 드라마를 완성한다. 최근 2편 제작이 준비되었지만 로빈 윌리엄스의 별세로 중단될듯싶다.
 
[쥬만지]는 로빈 윌리엄스의 가족 영화중 가장 어드벤처 성향이 강한 작품이었다. 우연히 하게 된 게임속 마법으로 게임판에 한평생 갇히다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소년을 연기했다. 윌리엄스 특유의 아이 같은 천진함이 [인디아나 존슨] 류의 어드벤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완성되는 지를 보여주었다. 극 중 소년의 성향이 남아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그의 모습은 누가 어른이고 아이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때문에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쾌했다. 외형만 어른이고 내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은 로빈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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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외쪽부터 시계방향)잭, 굿 윌 헌팅,바이센테니얼 맨,패치 아담스
 
 
1996년 이후의 출연작은 아이보다는 어른의 시각에서 그려진 작품인 동시에 인생에 대한 뜻깊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연출의 [잭]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성장 세포 기형으로 지능은 10살이지만 신체 나이는 40세 인 소년이다. 주변의 시선을 극복하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성장을 배우게 되고, 곧 다가올 죽음과 삶에 대한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되며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동안의 그의 출연작에서 볼 수 없었던 철학적인 요소가 강했기에, 이후의 그의 출연작에 변화가 생길 것을 예고한 것이었다. 패기 넘치는 두 천재 배우 맷 데이먼, 벤 애플렉의 등장을 알린 [굿 윌 헌팅]에서는 조금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극 중 그의 역할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면모를 지녔지만, 자신의 아픈 상처를 함께 공유하며 자괴감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세상에 나오지 못한 청년을 인도하는 스승으로 등장했다. 가족 영화에서의 유쾌한 캐릭터로만 인식되던 그의 새로운 모습에 약간의 생소함을 느끼겠지만, 영화속 맷 데이먼과 나누는 대화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면서 그만의 따뜻한 감성이 성숙하게 치유의 감성이 될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진정한 치유의 메시지가 인상깊게 다가왔던 영화가 바로 [패치 아담스] 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헌터 아담스 라는 인물과 로빈 윌리엄스의 면모를 의사라는 캐릭터로 일치시킨다. 영화 속 헌터 아담스는 의사와 환자의 불편한 관계를 뛰어넘어 환자와 함께하고 공감하려는 열정적인 정신과 의사로 등장한다. 권위적인 흰 가운을 벗어던진 채 자신 스스로가 광대가 되어 환자들을 웃기고 정신적인 치유를 도와 아픔을 함께 극복하려는 모습은 로빈 윌리엄스와 그 본연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환자의 정신적 치유를 우선으로 생각하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지만, 나비 한 마리로 잃어버린 사명감을 되찾게 되는 장면은 그 만의 순수함으로 해석될수 있는 메시지 였다. 

가족영화 장르로 돌아온 [플러버]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SF 코믹 드라마로 끝나기 에게는 인상깊은 성인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았다. 연구에 대한 열정과 강박증에 건망증이 생겨 사랑을 잃을 뻔하다 그 열정으로 탄생한 물질 플러버로 사랑을 되찾고 자신의 로봇 조수에게 고백을 받는 장면은 착하고 순수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그리고 로봇 분장으로 화제가 된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간 본연에 대한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삶, 죽음 그리고 사랑 등 인간의 지닌 가치를 배우며 진정한 인간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90년 후반의 그의 대부분의 출연작은 그전의 가족 영화에 출연했던 캐릭터들과 다른 인생의 깊이를 배워나가며 성숙해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여러 실수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출연작을 남겼으며, 미개봉인 그가 남긴 작품들도 상당하다. 90년대 작품만 부각한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기억했던 그의 전성기 시절인 동시에 따뜻하고 행복했던 그의 미소를 많이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캡틴이었으며 피터팬, 아버지, 다웃파이어 여사, 게이머, 의사, 교수,대통령 그리고 어른이자 인간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자 로봇이었던 그는 추억 속의 인물로 남겨지게 되었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연기로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 그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당신과 함께한 90년대는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최재필 기자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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