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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멕시코' 프로레슬러 엘 산토의 영화들.

14.04.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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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차 리브레(Lucha Libre)는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싸움’이라는 뜻으로, 멕시코를 비롯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프로 레슬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특히, 이 프로 레슬링은 화려한 공중 기술과 빠르고 역동적인 몸놀림은 루차 리브레가 자랑하고 있는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런 루차 리브레를 하는 사람은 루차도르(Luchador)라고 부른다. 이들이 자동차 정비사,·음악강사, 성직자 등 다양한 사람들로 가면을 쓰고 변신하는 일탈의 무대에서 이름 없는 영웅으로 살아간다. 잭 블랙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나쵸 리브레]는 바로 이 루차도르의 삶을 이어간 한 성직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 루차도르 레슬러 중에도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으니 '엘 산토'라 불리는 루차도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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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멕시코시티의 빈민가에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겪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루차 리브레의 선수가 되었고,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나이인 33살에 챔피언이 되었다. 이후 계속되는 승승장구로 부와 인기를 동시에 축적하였지만, 그가 지금의 멕시코의 아이콘이자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성 이었다. 자신이 번 수많은 돈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멕시코 최고의 기부왕이 되면서 서민들은 그에게 열광하며 '신이 보낸 영웅'으로 떠받들기까지 했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며, 국회의원 출마가 아닌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제안받았을 정도였다. 여러 명예스런 제안이 있었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루차도르로서의 삶을 살며 서민들의 친구로 살았다. 그는 경기와 일상생활에서 절대로 가면을 벗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69세로 사망해 관속에 들어갈 때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색 가면을 절대로 벗지 않았다.
 
프로 레슬링으로 명성을 쌓은 국민적 스타인 만큼 그의 활동범위는 다양했다. 소설가와 수필가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과 함께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한 직업은 영화배우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 수만 60여 편. 프로 레슬링에 평생 가면을 쓰고 있는 만큼,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특징은 프로 레슬링 기술이 필수로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다. 그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미라와 같은 괴물들을 비롯해 외계인, 살인범과 싸우는 히어로로 등장한다. 지금 시대에서 본다면 '캡틴 멕시코'라 불러도 무방한 캐릭터다.
 
지금의 기준에서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연기, 연출력과 같은 작품의 완성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조악해 보이는 세트와 분장, 특수효과 모두 어설프다. 하지만 그 당시의 멕시코 서민들은 이 영화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으며, 어설픈 장면들 모두 컬트스러운 시각으로 감상한다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 중 대중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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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 vs 'La invasión de los marcianos',1967]
그는 대부분의 출연작에 프로 레슬러인 엘 산토 본인으로 출연해 악역 캐릭터들과 대결한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는데, 1966년 산토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과 인류의 운명을 놓고 격돌하게 된다. 바로 프로 레슬링으로… 첨단 무기와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왜 하필 레슬링으로 싸우고 제압당하는지는 이해 불가지만, 엘 산토의 지구 수호라는 점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심어린 마음으로 재미있게 영화를 즐겼다. SF라 정의하기에 민망한 특수효과와 편집화면을 보고 실소가 나오지만, 너무나 육감적으로 그려진 남녀 외계인들의 의상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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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 en El tesoro de Drácula ,1969]
드라큘라와의 대결이 예고된 호러물 이지만, 시작은 산토의 프로레슬링 경기다. 드라큘라가 등장하고 사람들은 납치하는 과정과 장면은 나름 호러영화의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그럴듯하다. 그리고 후반부에 드라큘라에 의해 조종된 인간 부하들과 늑대인간의 등장해 나름 스펙터클한 모험극이 될것 같았다.
 
 하지만 산토와 그의 레슬링 동료 블루 데몬은 드라큘라 일당의 소굴을 단번에 알게 되고 주먹 한 방과 레슬링 기술로 이들을 모두 제압한다. 그리고 마지막 '끝판왕' 드라큘라와 늑대인간은 산토의 드롭킥 한 번으로 끝. 그리고 남은 후반부는 평화로운 일상을 맞이하고 다시 프로레슬링 경기에 나선 산토와 블루데몬의 경기장면을 보여주고 마무리된다. 드라큘라라는 소재를 통해 산토의 프로 레슬링 기술과 능력을 더 강조한 영화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 호러 캐릭터와의 대결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에도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 미라 그리고 여자 뱀파이어가 출연하는 시리즈가 5편 더 등장하게 된다.
 
P.S: 경기장 밖에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 그의 일상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집에서 쉬고 있거나 체스를 두거나 그리고 데이트를 할때도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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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ctro del estrangulador,1966]
산토가 여성들만 목 졸라 살해하는 살인범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엘 산토의 영화에는 미녀 배우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또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흥행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 여성들을 보호하고 그녀들로부터 사랑받는 멋진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히어로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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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momias de Guanajuato,1972]
수많은 괴물을 홀로 상대한 산토지만, 때로 덤벼드는 미라군단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결국,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산토는 '어벤져스'와 같은 팀을 조직하는데, 그 주인공들이 바로 자신의 프로레슬링 두 친구 블루 데몬과 밀 마스카라 단둘이었다. 셋이 미라들을 공동묘지에 상대하는 장면은 프로 레슬링에서 쓰이는 찹공격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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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 contra cerebro del mal,1961]
산토는 무조건 프로레슬링으로만 악당을 제압하지 않는다. 그의 첫 영화 데뷔작은 마피아들과의 대결이었는데, 그는 이 영화에서 기관총을 쏘며 악당들을 상대한다. 참 영리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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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 en Anonimo mortal,1975]
초기에는 멕시코 마피아, 살인범, 악당을 대결하다가 괴물, 외계인과 같은 범우주적 악당들과 싸워 이기며 더 이상의 성대를 찾을 수 없었던 산토는 그다음 상대를 '나치'로 설정해 역사 바로잡기 운동에 나선다. 멕시코의 아이콘인 만큼 그가 나치와 싸우는 장면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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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ion suicida,1971]
산토는 첩보 액션물에도 출연했다. 그는 미녀 첩보원의 일을 도우면서 간간이 자신의 본업인 프로레슬링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목숨을 건 임무를 맡게 된 걸까? 이유는 저 포스터에 있는 미녀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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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can las brujas,1968]
산토는 이제 지옥에서 온 악령과 마녀를 상대한다. 물론, 특유의 프로레슬링 복장을입고 현장에 뛰어가고 적들을 제압한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닌 미지의 존재들. 결국, 산토는 아래 영상처럼 초인적인 힘(?)을 빌려 이들을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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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ev adam,1973]
이 작품은 산토가 직접 출연한 영화는 아니지만, 해외에서도 그의 인기와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 사례다. 그 당시 산토는 멕시코 다음으로 터키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수도 이스탄불에 그의 동상이 건립될 정도였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터키의 한 영화사는 산토의 복면 레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히어로 액션 영화 [3 dev adam] 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위의 포스터를 봤다면, 잠깐 자신의 눈을 의심할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캐릭터는 누가 봐도 '캡틴 아메리카'이며 우측에는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고, 산토는 이들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당시 저작권과 관련된 인식과 법적 규약이 적다 보니 이러한 짝퉁 작품들이 무수하게 등장했는데, 이 작품은 그중 가장 괴작으로 불리는 문제작 중 하나다.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을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들이 아닌 쫄쫄이 타이즈만 입은 '정신 이상자'처럼 그려냈기 때문이다.
 
내용은 스파이더맨이 악당으로 출연해 범죄 조직을 이끌고 이스탄불을 엉망으로 만들자 캡틴 아메리카와 산토가 이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특수효과와 액션 연출을 생각해 본다면 현재와 같은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기란 쉽지가 않다. 캡틴 아메리카는 방패 대신 맨몸을 괴력을 발휘하는 영웅으로 설정되었다. 산토는 트레이드마크인 흰색 마스크를 쓰며 맨몸에 망또를 두른 채로 특유의 프로레슬링 기술을 사용한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빨간색 의상이 아닌 초록색 의상에 실제 눈이 뚫려있는 마스크를 쓴 채로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그의 능력은 거미줄을 발사하는게  아닌 목숨이 여러 개인 악당으로 등장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낸다.
 
지금과 같은 화려한 특수효과와 액션을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빈약하면서 합이 맞지 않은 액션 동작들 때문에 영화 내내 어이없는 웃음만 자아내게 할 뿐이다. 특히, 캡틴과 산토가 함께 힘을 합쳐 자동차를 잡고 버티다 힘이 딸려 놓치는 장면은 히어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3 dev adam]은 괴작과 컬트 사이에 놓인 B급 영화의 전설로 남겨져 컬트 영화 매니아들의 필수 감상 작품이 되었다.   
 
 
엘 산토의 영화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컬트물과 같은 웃음거리용 영화로 보이겠지만, 그 당시 멕시코 서민들과 어린이들의 애환을 달래준 인기 오락물이었다. 때로는 유치하더라도 모든 이들이 즐거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랑받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상을 받고 호평을 받는 것보다 더 흐뭇할 것이라 생각한다. 챔피언이자 영웅이기에 앞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 모두를 행복하게 한 엘 산토는 그 점에서 멕시코 최고의 예술인이라 생각한다.  
 
P.S: 위의 작품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한글자막이 없지만, 액션동작과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특색있는 재미를 선사 할것이다.
 
최재필 기자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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