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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히어로 그래픽 노블. [데어데블: 본 어게인] 리뷰

14.03.13 16:43

 
언제였던가?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잡담을 나누다 [어벤져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누가 더 강한지 비교하고 내기하던 주제는 어느 새 그중에 약한 히어로를 언급하는 주제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그때 한 동료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어벤져스] 멤버들 중에 캡틴 아메리카는 가장 평범한 인간같아서 약할 것같아"
 
그 말이 나온 사이 다음 동료가 맞받아쳤다.
 
"아마 히어로 중에 가장 약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벤 애플렉이 주연한 그 히어로가 아닐까? 장님이었던 캐릭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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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료가 이야기한 영화와 히어로는 바로 '데어데블' 이었다. 그는 너무나 인간 같아서 강해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파워나 레이저 발사와 같은 기술이 있어야 진짜 센 히어로라고 생각하고 인간 다운 면모는 평범하게 보는것이 우리의 히어로 감별 방식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영웅을 현실에서 보기 힘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기준에서 어쩌면 캡틴아메리아, 데어데블은 그저 수트를 입고 조금 더 잘 싸우는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적인 히어로들의 등장은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히어로'와 같은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장애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을 '영웅'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우리가 가장 열광해야 하는 캐릭터는 바로 캡틴아메리카와 데어데블과 같은 '인간형 히어로' 여야 한다.
 
데어데블은 신체적 장애를 비롯해 어렸을 적 부모까지 잃은 정신적 충격까지 더해진, 불우한 환경의 집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한 슈퍼히어로이자 명성 있는 변호사로 살아가며 뒷골목과 법조계에서 악과 싸우는 '강한 인간'이기도 하다. 비록 국내에서는 그 가치가 저평가되었으나 '데어데블'은 그래픽노블에서는 마블의 대표 히어로로 매니아층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는 그가 그 어떤 히어로보다 가장 인간다움을 지닌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데어데블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은 [신 시티] [300]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작가 프랭크 밀러가 집필했고, 이번에 국내에 출시된 [데어데블: 본 어게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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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프랭크 밀러
그림:데이비드 마주켈리
 

*벼랑 끝까지 떨어진 히어로를 그리다 
 
'데어데블'의 또다른 이름은 '맷 머독'. 그는 어린 시절 사고로 방사성 폐기물에 의해 두 눈을 실명하게 되었지만 그로인해 4개의 초감각을 얻게된다. 평소 책을 읽기 좋아하고 공부를 잘했던 그였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학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유능한 변호사로 사회에 첫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갱단에 의해 살해되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악과 싸우겠다는 다짐을 하게되고, 변호사로서의 일상이 끝나면 자신의 초감각을 십분발휘하여 악당들과 싸우는 '데어데블'로 활약한다. 그런 '데어데블'의 공격에 막대한 손해를 입은 갱단의 두목 '킹핀'은 보복을 선언하고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히어로들의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데어데블' 맷 머독의 정체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데어데블에게 정체 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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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애인이었으나 지금은 헤어진 마약 중독자 전 여자친구가 갱단에 '맷 머독=데어데블'이라는 정체를 흘린 것이다. 이 정보는 데어데블의 연적 '킹핀'에게 넘어가고 정치, 사법, 금융 등 모든 분야에 손을 뻗은 그는 맷 머독, '데어데블'을 철저히 파괴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히어로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상황은 바로 '신상 유출' 이다. 물론, 아이언맨과 같은 자신감 넘치는(?)타입의 인물은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들은 각자의 생계와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신상이 공개된다면 그들이 사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릴수 있다.
 
히어로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 승승장구하며 맷 머독은 상류층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정의'라는 신념은 여전히 지키고 있었지만, 계속된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고 악에 대한 경계도 무뎌졌다. 게다가 여러 여성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고 잘못된 선택으로 로펌을 파산했을 정도로, 인생에서도 더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이젠 그는 '데어데블' 보다는 맷 머독 이라는 평범한 남자의 삶으로만 살아가려는 듯 했다. 킹핀은 바로 이러한 여유로운 삶을 파괴하기로 작정한다. 맷 머독은 더이상 은행에서 자신의 돈을 인출할수도 없으며,그의 직업인 변호사 자격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유일한 자신의 보금자리인 집마저 킹핀에 의해 폭파된다. 자신의 삶과 거주지를 잃어버린 맷 머독은 자신의 유일한 마지막 무기인 '이성'을 상실하게 되고 친구, 전 애인이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표적은 숙적 킹핀을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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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킹핀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성과 냉철함을 잃은 히어로는 이제 자신의 허점을 들어내기에 이른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어 더이상 두려울게 없는 머독은 혈혈단신 킹핀의 아지트로 찾아가 그와 격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오랜 승리에 취해 적을 얕본 허황됨과 분노만 가득한 머독의 공격은 비로소 헛점이 되고 킹핀은 머독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두들겨팬다. 자신의 라이벌에게 패하며 더는 스스로 자립할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인간이자 히어로인 맷 머독 '데어데블'은 이제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더이상 영웅으로서가 아닌 인생의 밑바닥 까지 추락한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최후뿐이다.
 
그의 과거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처럼 이 책은 그만의 적절한 최후를 그린 작품으로 보여질 것이다. 하지만, 책의 제목인 '본 어게인'(환생)이 의미하듯이 이것은 그의 최후가 아닌 또 다른 가능성과 희망을 그렸다.
 

*희망을 잃은 자는 두렴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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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주인공 맷 머독에만 초점을 두지않고, 그의 친구들과 주변인물 들에도 시점을 옮긴다. 그의 동료, 전 여자친구들, 기자, 수녀(머독의 어머니로 추정) 그리고 악당 킹핀까지… 그들은 머독에게 시련을 주는 동시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 그들 또한 시련과 고통을 함께 겪다가 머독과 함께 멋지게 일어서게 된다.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진정한 영웅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이웃과 친구의 도움과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모두 영웅은 될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영웅들의 영웅'이 될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데어데블'의 뜻은 '두려움을 모르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책속의 독백에서 "희망을 잃은 남자에겐 두려움도 없다는 것을…" 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것은 바로 '희망' 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위기로 분노와 증오가 가득차 이성을 잃어버린 머독은 죽다 살아나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뉴욕의 빈민가 '헬스키친'의 사람들과 환경을 바라보며 본래의 순수한 열정을 찾게되고, 자신을 배신하고 괴롭혔던 자들에게 화해와 용서의 손길을 걷내게 된다. 그 스스로를 구원한 머독은 다시 '데어데블'로 탄생하게 되었고, 영원한 악당 킹핀에게 다시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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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잃었다."라며 스스로 읊조리지만 그는 물질적 희망이 아닌 보이지 않는 '희망'을 얻게된다. 이는 인생의 패배감에 젖어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프랭크 밀러가 여러번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다. 부모와 동료를 잃은 상처를 간직한 배트맨은 아픔을 이겨내고 악에 도전한다. 죄의 도시 '씬시티'속 절망적 인생들은 일말의 희망을 갖고 부패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지킨다. 그리고 인간적 영웅 '데어데블'은 패배를 통해 강해졌다. 이것이 바로 왜 '데어데블'이 다시 재평가 받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기대한 화려한 초능력은 없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한계와 고난을 극복해 끝내 승리하는 히어로 라는 점이다.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앞서 소개했던 그래픽 노블들과 다르게 화려한 그림체와 시각효과를 내세우지 않는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1987년 이기에 그 시기에 그려진 그림체와 캐릭터들의 형태가 고전적으로 보일수가 있다. 하지만, 프랭크 밀러 특유의 강렬한 문체와 이야기 전개가 더해지면서 매우 역동적인 그래픽 노블로 탄생되었다. 자신의 삶과 심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독백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유도해 히어로의 인간성을 강조한다. 이는 프랭크 밀러가 그래픽 노블을 어떻게 문학 작품 못지 않은 최고 수준으로 올렸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제나 히어로의 인간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내면속 숨겨진 히어로 본능을 자극하는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때문에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그래픽 노블 매니아들이라면 충분히 열광할 것이며,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해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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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버전의 실패가 말해주듯이 미국내에서도 [데어데블]의 인지도는 마블의 대표 캐릭터들보다 낮은편이다. 한 때, [데어데블]의 영화 리부트가 제시되기도 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데어데블]시리즈는 현재 TV 드라마 버전으로 제작을 확정지은 상태다. 소니 픽쳐스가 제작하며 [케빈 인더 우즈]의 연출자이
자 헐리웃 최고의 각본가로 이름을 알린 드류 고다드가 각본과 1회 연출을 맡을 예정이다. 프랭크 밀러의 이 작품이 이번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MAR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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