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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퇴’ 황목치승 “보여준 것보다 많은 사랑…난 성공한 야구선수”

임동훈 ㅣ 17.10.27 14:30



황목치승의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에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3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국내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가 가진 야구 열정을 쏟아내기에 4년 이라는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LG의 유니폼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였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떠난 황목치승은 교토국제학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세아대학에 진학했다. 꾸준히 야구를 하긴 했지만, 실력 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과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를 내려놓았다.

때마침 일본 소속 팀에서 귀화를 권유했다. 야구를 그만둔다 하더라도 사회인 야구팀과 관련된 회사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고민을 했지만, 그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구에 대한 미련도 미련이지만, 국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후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신체검사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다. 부상정도가 심각했던 것이다. 야구에 대한 미련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고양 원더스에 입단한 그는 그곳에서 1년 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결국 황목치승은 지난 2013년 10월 육성선수로 LG에 입단했다. 이듬해에는 정식선수 타이틀을 달았다. 몇 번이고 힘든 순간이 그를 덮쳤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기에 입을 수 있었던 LG 유니폼이었다.

그라운드에서 황목치승의 플레이는 투지 그 자체였다. 주전선수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선수였다. 그런 그에게 팬들은 ‘소림사야구’ ‘오늘만 사는 야구’ ‘슬라이딩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그런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기회를 받았던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10월의 끝자락, 경기도 구리시의 한 카페에서 황목치승을 만났다. 은퇴를 결정하게 된 계기와 그간의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행복한 선수’였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황목치승은 떠나지만, 그가 보여준 야구에 대한 열정과 투지는 그라운드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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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황목치승과의 일문일답>

- 몇 년 만에 여유로운 비시즌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야구를 그만 두고 나니 겨울이 한가해졌다. 요즘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일본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일본으로 넘어 가는 거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다. 대부분 선수들이 12월에 결혼을 해서 모두 참석을 하고 그 이후에 넘어갈 생각이다. 원래 꿈을 잘 안 꾸는 스타일인데, 요 며칠 동안 야구하는 꿈을 꾸더라. 후회 없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미련이라는 게 있었나 보다.”

- 은퇴 결정을 내리게 된 정확한 이유가 궁금하다. 소식을 듣고 많이들 아쉬워했다.

“예전부터 은퇴를 하면 장인어른의 칠기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야구를 올해만하고 그만 둘 생각은 없었는데, 지난 3월부터 장인어른의 몸이 안 좋아지셨다.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 후로 와이프와 상의를 했다. 외동딸이기에 아픈 아버지 옆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됐고, 칠기 일을 지금 배우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인어른은 ‘너한테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하셨지만, 가족을 위해 선택했다. 칠기 장인이 되기까지 걸어오신 길을 내가 이어가고 싶었다.

- 칠기 공예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부딪쳐보면 안될 일은 없다고 본다. 은퇴 기사를 읽다가 댓글을 봤는데, ‘그런 근성이면 어디에 가서 뭘 해도 성공하겠다’고 하더라.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장인어른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솜씨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 프로에 오기까지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기에 LG 유니폼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야구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민 끝에 은퇴 결정은 8~9월쯤에 내렸다. 결정을 내린 후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운 마음은 있다. 그래서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것 다하고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다. 한 타석, 공 하나에 집중하고 절실했던 것 같다. 나보다 부모님께서 더 아쉬워하셨다.”

- 야구를 하기 위해 그동안 고생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온 부모님이기에 그랬을 것 같다.

“은퇴를 결정하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내가 (야구를)그만두지 말라고 하면 안 그만 둘꺼냐’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 ‘내 하나의 즐거움이 없어지는 구나’라고 말하며 눈물까지 흘리셨다. 마음이 아팠다. 아들 야구한다고 뒷바라지 다해주시고, 프로에 와서는 늘 경기를 챙겨보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는데, 아버지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크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아쉽긴 해도 일본에 가서 잘하면 된다’며 힘을 실어주셨다.”

- 은퇴를 LG 선수단 전체 회식 때 공식화 했다고 알고 있다.

“은퇴 결정은 시즌 중에 내렸다. 소문이 나지 않도록 시즌 끝날 때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까운 몇몇 선수들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즌 끝나고 회식 날 (류)제국이 형이 ‘이왕 모인 김에 얘기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동료들에게 ‘앞으로는 선수가 아닌 팬으로 LG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알리게 돼서 서운해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이후에 소문이 빠르게 번져 가더라. 말의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 소식을 듣고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을 것 같다.

“고양 원더스에서 함께 했던 선수들이 연락을 해왔다. 김성근 감독님한테는 직접 전화를 드렸다. 감독님이 ‘은퇴하게 됐다고 들었다. 더 할 수 있는데 안타깝구나. 다음에 일본에서 얼굴보자’고 말씀해주셨다. 양상문 단장님께는 시즌 끝나고 인사를 드렸다. ‘미안하다 기회를 더 줬으면 더 있었을 것 이냐. 기회를 많이 못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개인적으로는 기회를 많이 받았고, 감독님 덕분에 이 자리에 왔다. 내야 경쟁자들 많은데 써주셔서 감사했다’고 말씀드렸다.”

- 은퇴를 시즌 중에 결정했다면 시즌 마지막 경기가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미리 알렸더라면, 마지막 경기를 1군에서 함께 할 수도 있었을 텐데.(황목치승은 9월9일 엔트리 말소 후 시즌 2군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마지막 경기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그런 이유로 내가 엔트리에 들어갔다면 누군가는 나 때문에 기회를 받지 못한다. 다른 선수에게 팀에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은퇴를 결정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결정하고 나서는 더욱 ‘언제 내려가도 후회 없이 야구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수비 한 번, 타석에 한 번 들어설 때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간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울컥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엇인가.

“홈 슬라이딩했던 경기가 기억난다.(지난 7월 26일 잠실 넥센전에서 9회 2사 후 황목치승의 절묘한 홈 슬라이딩으로 LG는 극적인 3-3 동점을 만들었다. 당시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으나, 비디오판독으로 세이프로 번복됐다.) 대주자로 나가면 무조건 홈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뛴다. 그때도 그랬다. 예전부터 슬라이딩이나 수비에 관련된 영상을 많이 봤다. 나도 이런 플레이가 가능할까 막연하게 생각만 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까 되긴 되더라.”

- 반면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무엇인가.

“2011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 올 때에는 부상 때문에 미련 없이 야구를 그만둔 상황이었다. 그러다 고양 원더스에 들어가서 야구를 시작했고, 프로까지 왔다. 프로에서도 2군을 거쳐 1군에도 올라가봤고, 플레이오프에 선발 출장도 했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순간보다 감사할 일이 많은 야구 인생이었다. 다만, ‘잠실구장에서 홈런을 쳐봤으면’하는 생각은 든다. 그 많은 관중들 앞에서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면 기분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퓨처스에서는 있는데 1군 경기에서는 홈런이 없다.”

- 그라운드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 덕에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나 별명들이 많다.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황금치승’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다. 금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좋은 것 같다. 사실 프로 통산 성적으로만 보면 4년 동안 150경기 정도밖에 못 뛴 그저 그런 선수인데, 팬들이 많이 기억해주시고, 은퇴 소식을 듣고 아쉬워해주셔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응원해준 팬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기록을 떠나서 은퇴 소식이 전해지고 아쉬워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성공한 야구선수였다고 생각한다. 야구를 떠나서 이제는 다른 일을 하지만, 팬으로서 LG를 열심히 응원하겠다. 훗날 야구장에서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 프로 4년 동안 LG맨으로 살았다. 어디 가서 경험해보지 못할 일들을 경험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감사하다. 그런 기회가 나에게 찾아 올 지 모르겠지만, 후에 잠실에서 시구를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영광일 것 같다.”

- 황목치승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였나.

“의식주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집에서 잠을 자는 게 일상이 듯 내게 야구가 그랬다. 그저 매일같이 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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