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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8년의 마이너리그 이학주, 시간을 되돌린다면..

16.11.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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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야옹미인 '[야옹다옹] 빅리그 좌절 이학주, 도전은 계속된다' 편 에 이어서 연재되는 기사입니다.

- 마이너리그 생활 내내 빅리그 문턱에서 좌절하는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생각도 많았을 것 같다.

이학주  “‘다 왔다. 힘내라’라는 말에 희망을 걸고 8년을 버텼다. 미국에 있으면서 이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시고 믿어주셨던 부모님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야구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부모님 덕분이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지난 8월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몇 달 동안 야구를 못했다. 야구공만 봐도 빨리 야구를 하고 싶고, 이제는 야구에 대한 간절함까지 생긴다.”

- 옵트아웃 조항 행사 당시 일본 진출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는데.

이학주  “사실 옵트아웃을 행사한 것도 일본 진출과 관련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전부터 요미우리 쪽에서 얘기가 나오기도 했고, 관계자가 미국으로 와서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옵터 쓰기 5일 전쯤에는 소프트뱅크 스카우트가 와서 ‘잘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계약이라는 게 계약서를 쓰고 사인을 해야만 성사되는 것이지만, 일본 쪽에서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에 잘 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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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동안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학주  “(잠시 고민하더니)잃은 것은 없다. 얻은 것이 워낙 많아서 잃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경험은 내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물이다. 슈퍼스타급 선수들이랑 함께 야구를 하면서 배운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야구를 대하는 마인드나 몸 관리하는 방법 등 미국이 아니면 배우지 못했을 부분들이 많다. 문화나 영어를 배운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

- 미국 도전을 실패라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이학주  “실패는 인정한다. 내 나름의 꿈을 가지고 미국에 갔지만,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딜 가서도 해낼 수 있는 힘을 얻어서 왔다. 미국에서의 시간뿐 아니라 나는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는 해볼 만 한 것 같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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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진(LA 다저스)의 미국 진출 이후에 국내 무대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어린 선수들이 늘어났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또 다시 미국 직행을 선택할 것 같은가.

이학주  “그렇다. KBO리그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경우 성공에 대한 안정성이 높을 수는 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환경은 정말 매력적이다. 갖고 있는 힘이나 근력 자체가 다른 여러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과 다양한 경험을 통한 멘탈 강화도 도움이 된다. 야구를 하는 환경 자체도 상당히 좋다. 경험 면에서는 미국 직행은 나쁘지 않다. 다만, 한국에 돌아왔을 때 2년을 쉬어야하는 규정은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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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급한대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KBO야구규약 제107조에는 ‘신인선수 중 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재학하고 한국 프로구단 소속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구단과 선수계약을 한 선수는 외국 프로구단과의 당해 선수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간 KBO 소속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명시 돼있다.)

이학주  “해외 진출이 아니라면 2년 동안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 불안감이 크다. 2년 동안 야구를 못 할 생각을 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괴롭다. 다른 선수들의 경우 2년 동안 군입대를 선택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선택했던 게 야구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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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학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이학주  “일단 야구를 하는 게 중요했다. 선수를 그만둘게 아니라면 몸을 계속 만들어야하고, 야구를 할 곳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임호균 야구학교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좋은 환경과 시설에서 야구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플레잉 코치는 말 그대로 선수 겸 코치이기 때문에 내게는 또 다른 도전이 될 수 있다.”

- 야구를 계속 하기 위함이라면 독립리그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이학주  “야구학교에 박명환 코치님이 계시는데, 과거에 인연이 있는 분이다. 3년 전에 내가 재활을 할 때 멘탈을 잘 잡아 주셨다. 지금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신다. 박명환 코치님 뿐 아니라 김응용 감독님이나 마해영 코치님 등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근처에 있다는 게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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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진출이나 다시 미국에 나가는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있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학주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4개월 동안 야구를 못했는데, 벌써부터 못 견디겠다. 새삼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깨닫고 있다. 이제는 야구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다. 지금은 스스로를 잘 다스려야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한다. 한국에서 뛰고 싶지만, 2년을 쉬어야하는 규정은 내게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진다. 2년 후면 나이도 30대가 된다. 그래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 등 기회가 온다면 어디든 도전할 생각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미국에 도전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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